[창간 87주년]‘실버 재취업’ 기업-근로자 양보가 관건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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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7시 반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정문. 이 회사 안전보건부 이규철(61) 기장이 밝은 표정으로 출근했다. 그는 3년 전 32년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했으나 그동안의 성실성을 인정받아 재고용됐다. 요즘 그는 조립, 용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밤새 야근 현장을 돌아다니며 안전관리를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01년부터 해마다 정년퇴직자 20명가량을 재고용하다 지난해엔 160명으로 늘렸다. 올해부터는 아예 정년을 만 58세로 1년 연장했다.

○노인들도 일하는 사회로

경기 안양시 평화엔지니어링(1995년 설립)은 전체 직원 575명 가운데 116명이 55세 이상이다. 60세 이상이 66명, 70대 직원도 4명이 있다.

이 회사 송인하 상무는 “노인 인력은 지시를 하기 전에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업무 효율이 높다”며 “어린 직원들과도 잘 어울려 회사 분위기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에도 고령 세대를 재고용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서울대 조영태(인구학) 교수는 “생산인구를 유지하고 노인 부양 부담을 줄이려면 퇴직 시기를 늦추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인적자원 활용 2+5 전략’에서 평균 퇴직연령을 현재의 55세 안팎에서 5년 연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일단 긍정적인 정책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오래 일하려면 서로 양보해야

정년 연장이나 퇴직자 재고용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기업 측면에서는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에서 고령자 고용은 기업에 큰 부담이 된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기준 55세 이상 근로자 임금은 34세 이하 근로자 임금의 3배 수준. 그러나 임금 대비 생산성은 55세 이상이 34세 이하의 60% 선에 불과하다. 일을 더 잘하긴 하지만 3배의 임금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년 또는 퇴직 후 재고용을 보장하되 일정 연령을 넘으면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가 국내 업체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노동연구원 방하남 연구위원은 “지금 같은 임금체계로는 정년을 연장하면 곧바로 인건비가 늘어난다”며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기업이 정년 연장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와 노조가 서로 조금씩 양보해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니어 마켓을 주목하라

미국 컬럼비아대 제프리 색스 교수는 최근 “고령화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의 출산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인구가 계속 줄어들겠지만 이것만 놓고 비관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며 “국가경제의 질(質)을 판단하는 지표 중 하나는 바로 장수(longevity)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은퇴 이후에도 구매력을 가진 최초의 세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50대의 2005년 가구당 연소득은 4547만 원으로 모든 연령대 중에서 가장 높다. 인구가 많은 데다 노후 준비도 어느 정도 한 세대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앞 다퉈 실버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정치적으로도 이들은 은퇴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고려대 이내영(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인 일자리, 복지, 연금제도 등 고령층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정책이 정당이나 후보들의 중요한 공약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인의 개념을 바꿔야

은퇴 후 노후생활이 길어지면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우림건설 김종욱(47·개발영업담당) 상무는 노후대책으로 ‘마당발’을 선택했다. 참여하는 각종 모임만 26개. 동창회는 물론 등산, 족구, 자동차 캠핑, 공연 등 동호회 모임도 많다. 외로운 말년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다.

성균관대 서용원(심리학) 교수는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전통적 혈연 공동체가 약화되고 그 자리를 사이버 공동체, 동호회, 지역 공동체 등이 대체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고령화 문제점 및 주요 대응 방안
문제점대응 방안
생산가능인구 감소
및 생산성 하락
―정년 및 퇴직연령 연장(장기적으로 정년제 폐지)
―임금피크제 등 직무·성과별 임금체계 도입
―평생교육 시스템 구축
―노사 합의를 통한 고용 유연화
출산율 하락―국가의 육아 책임(보육비, 시설 등 제공)
―적극적 고용 개선조치 의무화로 여성 고용 확대
젊은 층의 노인 부양 부담 증가―국민연금 개혁
―장기요양보험 도입
―노령 연금, 노인수발보험 도입
가족 역할 변화 및 부모 부양 감소―가족의 중심을 ‘부부―자녀’에서 ‘아내―남편’으로 이동
―동호회 등 은퇴 후를 대비한 모임 확대
―고령에 대한 인식 전환
노인 주거시설 부족―노인 임대주택 공급
―실버타운 세제 지원
자료: 각 부처, 한국개발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노동연구원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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