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철밥통도 비판하는 교수사회

  • 입력 2007년 3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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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오영교 동국대 총장은 얼마 전 취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뜸 이런 말부터 꺼냈다.

“대학에 와 보니 ‘공무원 철밥통’은 ‘교수 철밥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년만 보장받으면 잘 가르치지 않아도, 논문을 쓰지 않아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쫓겨날 처지라도 사립학교법이 ‘보호’ 위주다. 저항이 있더라도 업적에 맞게 대우하는 연봉제를 꼭 도입하려고 한다. 철밥통을 깨지는 못해도 알루미늄 강도 정도로는 만들어야겠다.”

오 총장뿐만이 아니다. 이상철 광운대 총장도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정보통신부 장관도 해 봤지만 대학이 기업 같았으면 하루에도 열 번씩 들었다 놨다 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과학기술부총리까지 지낸 오명 건국대 총장은 “나보다 낮은 사람은 부총장밖에 없다”고 했을 정도다.

근무 강도나 경쟁이 치열한 기업체나 정부 부처에서 일하다 잠시 대학을 경험한 인사들은 대학을 ‘천국’이라고 부러워하면서도 교수 사회의 풍토를 개탄한다. 사립대 초빙교수 경험이 있는 한 교육부 국장은 “1시간 회의만 하면 될 사소한 사안을 2주일이나 회의를 하더니 교수 3분의 1이 반대하자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며 “이런 조직이 경쟁력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학은 이해하기 어려운 묘한 조직이다. 외형상으론 학과-단과대-대학본부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지만 그 연계가 느슨하고 수평적인 데다 교수 개개인이 독립적인 전문가여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이완결합’ 체제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어 ‘조직화된 무정부(organized anarchy)’라고도 불린다.

이런 대학이 망하지 않고 800년 넘게 살아남은 비결은 무엇일까. 역설적이긴 하지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클라크 커 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총장은 “다른 모든 것은 다 변해도 대학은 대체로 변화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 영국 의회, 스위스연방 주와 대학들도 그래서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대학의 효시라는 이탈리아 볼로냐대(1158년), 프랑스 파리대(1158년), 영국 옥스퍼드대(1167년)를 비롯해 1520년대 이전에 설립된 85개 대학이 지금도 당시의 교수 학생 대학조직, 커리큘럼의 원형을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

또 한 가지 생존 비결은 대학이 전통적인 전문 직업인 양성 기능을 하면서도 기술 발전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정치나 경제의 통제로부터 자율성을 보호받아 온 점이다. 이런 역사적 속성이 체화돼 내려온 탓인지 대학은 여전히 상아탑으로 자부하며 변화에는 둔감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우물 안 경쟁’은 이제 의미가 없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한다. 남보다 빨리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오랜 기간에 걸쳐 살아남은 대학들도 모두 경쟁력 강화에 골몰하고 있다. 커 전 총장이 ‘역사는 관찰자의 펜보다 빨리 움직인다’고 한 말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최근 울산과학기술대 설치운영법이 통과돼 2009년 3월 인사·행정·재정 자율권을 갖는 첫 국립대 법인으로 개교한다. 9일 국립대법인화 특별법이 입법 예고되자 국공립대 교수들이 반발하고 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대학도 살고 국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는 길은 역시 변화에 앞서 가는 것이 아닐까.

이인철 교육생활부 차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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