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담배 안피워도 폐암 걸릴수 있다”

  • 입력 2007년 1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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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에 쏠린 눈2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가 ‘담배소송’에서 폐암환자 측에 패소 판결을 내린 직후 한국금연운동협의회 관계자들과 소송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당한 판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판결에 쏠린 눈
2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가 ‘담배소송’에서 폐암환자 측에 패소 판결을 내린 직후 한국금연운동협의회 관계자들과 소송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당한 판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KT&G가 승소한 이른바 ‘담배소송’ 1심 판결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원고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해서 폐암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KT&G가 담배 제조 판매 과정에 불법을 저질렀다거나 불법을 숨겼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원고인 폐암환자(일부 사망)와 가족들은 ‘KT&G가 담배를 만들어 팔 때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숨겼고, 그렇게 만들어진 담배가 폐암 발병의 원인이 됐다는 점’을 밝혀야 소송에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기가 어려웠던 것.

흡연과 폐암의 관련성은 이미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됐고, 담배회사나 흡연자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쟁점은 그 관련성을 밝히는 게 아니었다.

▽담배 안 피웠다면 폐암 안 걸렸을까=담배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흡연과 폐암의 역학적 인과관계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역학적 인과관계란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해서 다른 조건들은 모두 같다는 가정에서 밝혀낸 특정한 원인(흡연)과 질병(폐암)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

그러나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사실만으로 이 사건의 원고들에게 생긴 폐암의 원인을 흡연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번 사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조경란)의 판단이다.

폐암의 원인은 흡연뿐 아니라 유전적 요인, 음주, 환경오염, 대기오염, 산업배기가스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주장한 니코틴의 중독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존성은 인정되지만 아편, 마약 등에 비해 정도가 약한 편”이라며 “흡연은 흡연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담배 만들어 팔 때 잘못 없었다=재판부는 담배를 만드는 과정에 결함이나 하자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담배 연기에 포함된 니코틴 타르 등은 담배를 피울 때 자연 발생한다는 것. 재판부는 KT&G가 필터를 개선하거나 담뱃잎의 양을 줄이는 방법 등을 이용해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담배 연기의 타르와 니코틴 양을 줄여 왔다고 인정했다. 그러한 노력이 최선이었다는 얘기다.

흡연자들이 담배 연기에서 니코틴과 타르를 완전히 없애는 것에 만족하는지, 니코틴과 타르를 없앨 방법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쟁점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담배를 피워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흡연의 본질적 특성인 이상 니코틴과 타르가 몸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담배의 니코틴은 술의 알코올이나 커피의 카페인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재판부는 또 “KT&G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1976년부터 담뱃갑에 흡연의 유해성에 관한 경고 문구를 표시했다”며 “세계적인 흐름과 비교해도 한국이 흡연의 유해성을 알려야 할 의무를 특별히 게을리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7년 4개월 신경전 일단락=2004년 11월 폐암환자 측은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다. 서울대 의대 감정단이 제출한 ‘흡연과 폐암 발병 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감정서’를 재판부가 요약해 언론에 배포하면서 KT&G 측에 유리하게 왜곡했다는 이유에서다. 한 달 뒤 재판부가 바뀌었다.

재판부는 2005년 4월 원고 측의 조정신청을 받아들여 조정을 시도했지만 KT&G 측이 이를 거부해 결렬됐다. 소송이 진행되는 7년 4개월간 모두 52차례의 변론기일이 있었고 담배소송에 원고로 참여했던 폐암환자 7명 중 4명이 사망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임재완(26·고려대 신문방송학), 이서현(23·서울대 노어노문학)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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