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정호]기적은 일어난다

  • 입력 2006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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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일어난다. 누구나 환경문제는 시민들에게 맡겨 두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국가가 나서서 시민의 오염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다. 시민들 스스로는 깨끗한 강물과 같이 전체의 이익이 걸린 것을 위해서는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4000명도 넘는 농민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서 5급수의 썩은 물을 1급수로 끌어올렸다. 먼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에서 기적처럼 일어난 일이다. 1998년 경남 김해시 상동면 대포천 사람들이 해낸 일인데 지금까지도 1급수의 수질을 유지하고 있다. ‘daepocheon.gimhae.go.kr’를 치고 직접 들어가 보시라.

주민들뿐만 아니라 환경부도 아주 현명했다. 1급수를 유지하는 한 그 지역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 환경부의 약속이 주민들로 하여금 기적 같은 일을 이루어 내게 이끈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주민들이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한 환경 규제를 할 이유는 없다. 환경의 질도 좋지만 산업활동을 하게 하면서 환경의 질도 지킨다면 금상첨화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권을 가진 자가 그 칼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을 참아 내기는 쉽지 않다. 대포천에서 환경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규제없이 이룬 대포천 1급수

그런 현명함이 필요한 곳이 또 있다. 경기 이천시의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이다. 2011년까지 13조5000억 원을 들여 기존 공장용지 옆에다가 12인치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데 환경 규제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반도체 가공 과정에서 구리가 배출되기 때문에 안 되겠다는 것이다. 중금속인 구리가 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로 해로운지는 양에 달려 있다. 아주 미량의 구리는 자연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데 하이닉스가 배출하게 될 구리의 농도는 0.05ppm이다. 관련법이 정하고 있는 음용수 허용 기준 1ppm의 20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우리가 마시고 있는 물보다 더 깨끗하게 걸러서 내보내겠다는데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은 대포천에서 농민들에게 보여 준 유연하고 현명한 태도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이천공장의 증설이 좌절될 경우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크다. 공장이 완공되면 66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공사 중에는 연인원 195만 명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0.05ppm의 구리 때문에 그것을 잃어야 하는지 곱씹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환경부가 반대하는 배경에는 환경오염 그 자체보다는 이천공장 대신 충북에 있는 청주공장을 증설해 주길 바라는 뜻이 있는 것 같다. 하이닉스에는 D램 전용의 이천공장 말고도 낸드플래시 메모리 중심의 청주공장이 있다. 청주 시민들은 이천공장 대신 청주공장에 투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천공장 증설을 허용한 뒤에 불어 닥칠 충청도민의 반발이 걱정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반도체 시장의 치열한 경쟁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지역 안배의 시각에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하이닉스가 증설하려는 것은 D램 공장인데 이것을 가동하려면 별도의 전력과 수도 등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이천공장 용지에는 D램용 기반시설이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공장만 증설하면 된다. 반면 청주공장에 지으려면 기반시설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원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완공에 시간이 오래 걸려 물건을 시장에 내놓을 때면 이미 수요가 없어진 다음일 가능성도 높다. 반도체의 제품 주기가 얼마나 짧은지는 대부분의 독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천공장 증설을 막는다고 그 투자가 청주공장으로 향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이닉스엔 여전한 규제의 칼

하이닉스가 10월 10일 ST 마이크로사와 공동으로 20억 달러를 투자해서 중국 장쑤(江蘇) 성 우시(無錫) 시에 공장 설립에 착수했음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낸드플래시메모리와 D램을 모두 생산하는 공장이다. 이천공장의 증설을 못 하게 하면 기왕 짓는 것 중국공장의 규모를 더 늘려서 짓기는 쉬울 것이다.

환경부가 대포천에서 농민들에게 보였던 유연성과 아량을 기업에도 똑같이 베풀어 준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바라는 것일까.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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