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주변에서 탄성이 터졌다. ‘쾌유를 기원합니다’ ‘힘내세요! 꼭 힘내세요!’라는 꼬마전구 글자가 선명하게 불빛 미소를 머금자 환자와 가족들은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찰칵, 찰칵.’ 휴대전화카메라의 셔터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점등식을 가진 강북삼성병원 앞마당 크리스마스트리는 올해가 저물 때까지 깊은 밤에도 깨어 환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을 것이다.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는 곧 가라앉았다.
“아, 몇 번이나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밝힐 수 있을까.”
최 씨는 물기를 머금은 눈가를 슬쩍 훔쳤다. 그는 폐암환자다. 머리도 거의 다 빠졌다. 1년 반 전 암 진단을 받은 뒤 항암치료를 꾸준히 받아 암세포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올 6월 암세포가 간에도 번졌다는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두 번째 절망이 엄습했지요.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 버린 줄 알았는데…. 폐암은 전이되면 완치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충격이 더 컸습니다. 요즘은 약이 좋기 때문에 좀 오래는 살 수 있겠죠. 오래 살아야 합니다. 딸이 결혼할 때 예식장에 가야 하는데….”
젊었을 때 이혼한 최 씨는 20여 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홀로 딸(24)을 키웠다. 외동딸은 대학을 마치고 지방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그는 눈을 감기 전에 딸에게 짝을 지어 줘야 안심이 될 것 같다.
정훈이는 추석 연휴가 끝난 뒤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건강하던 아이가 유치원에만 다녀오면 식은땀을 흘리고 걷지를 못했다. 엄마 김연아(34) 씨는 “1주일간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울기만 했어요. 제가 하도 우니까 정훈이가 제 몸 아픈 것은 제쳐두고 엄마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때부턴 숨어서 울어요.”
점등식을 구경하고 온 언니 오빠들이 병실 벽에 정훈이가 그린 ‘옛날 집’ ‘우리 집’ ‘케이크와 커피’ 등의 제목이 붙은 그림을 둘러보며 “그림이 벽을 가득 채울 때쯤이면 퇴원할 수 있을 거야”라고 위로했다.
이날 행사를 통해 환자와 의사들은 한가족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허벅지 근육종을 떼어 내는 수술을 받은 지 4년 만에 폐로 암세포가 전이된 문성숙(60) 씨는 항암치료만 28회나 받는 힘겨운 투병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아 웃음 전도사다. 이날도 환자 돌보느라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간호사들에게 행사장에 마련된 떡과 과자를 나르느라 바빴다. 강북삼성병원 내 40여 명의 암 환자들은 생사를 오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가족의 손도 꼭 쥐었다. 희망의 다른 이름은 ‘가족 사랑과 의지’였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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