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는' 회식 어떠세요?"…직장인 음주문화 개선

  • 입력 2006년 11월 23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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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청 이광기(52) 문화관광담당관은 부하직원을 이끄는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업무 파악이 뛰어난 것이 주된 이유지만 한 가지 더, 그는 강력한 '폭탄주'제조로 직원들을 제압하곤 한다.

웬만해선 그를 당하지 못했다. 부하직원을 모두 모아 회식을 할 때면 인원수에 맞춰 잔을 늘어놓고 단숨에 폭탄주를 제조하는 기술까지 선보이면 술을 못 마시는 직원도 어쩔 수 없이 잔을 비워야 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직원도 점차 이 분위기에 익숙해졌고 '회식=폭탄주'라는 공식이 통용됐다.

그런 그가 21일 오후 6시 반 복합문화공간인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고양어울림누리에 직원 16명과 함께 나타났다. 재단법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가 마련한 직장인 음주문화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프로그램은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직장인 회식 현실을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음주문화를 개선해야하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강의 40분, 참석자들이 친밀감을 높이는 활동으로 '놀이연극'을 하는데 50분, 이어 식사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폭탄주를 마시면 왜 빨리 취하나?' '술 깨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숙취해소에 좋은 음식은?' 등등의 질문에 대한 답이 이어지면서 참석자들의 관심이 높아갔다.

폭탄주의 알콜도수가 13도 안팎인데도 빨리 취하는 것은 이 정도 수치에서 인체가 알코올을 가장 빠르게 흡수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강권하거나 잔을 돌리며 술을 권하는 행동을 자제하면서 절주(節酒) 하자는 내용으로 강연이 끝났다.

이어 연극놀이가 시작됐다.

'배가 고프니 10분만 하자'는 발언이 나와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으나 놀이연극 전문가인 김지옥(33·여) 강사의 노련함으로 점차 참석자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서로 몸을 부딪쳐가며 근육을 이완한 뒤 술래를 정하고 남의 집을 빼앗는 놀이를 할 때는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게임에 몰두했다.

저녁 회식이 시작되자 이날의 '술 없는' 회식에 대한 저마다의 평가가 나왔다.

술을 잘 못 마신다는 한 직원이 "이런 형태의 회식이 재밌어 보이고 내게 잘 맞는다"고 하자 "가끔하는 거야 좋을 수 있어 보이지만 명색이 회식인데 술 한 잔 없으면 곤란하다"고 맞서는 사람도 나왔다.

센터가 올해 서울 경기 지역 근로자 12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6.2%는 '회식이 나와 잘 맞지 않지만 맞추려 애쓴다'고 답했고 '아예 피하고 싶다'는 응답도 10.6%를 차지했다.

또 술을 마실 때마다 폭음(소주 1병, 맥주 1600cc이상)을 하는 직장인은 54%였고, 빈도로 보면 주 1회 폭음이 24.9%, 거의 매일 폭음한다는 응답도 2%였다.

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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