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탈선…무역사기…“글로벌 탐정에게 딱 걸렸어”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코멘트
《한국에서 타인의 소재지 추적은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저촉된다. ‘사설탐정’이라는 용어도 못 쓴다. ‘민간조사원’ 자격으로 변호사나 보험업체의 위임을 받아야만 활동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설정보업체는 음성적으로 ‘불륜 감시’ ‘해결사’ ‘심부름센터’ 업무에 주력해 왔다. 최근 사설정보업체들이 이런 한계를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인의 해외진출이 많아지면서 해외에서 조사수요가 커져가고 있고 미국, 유럽, 일본 등은 탐정 업무가 합법적이기 때문. 현재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사설정보업체는 50여 개.》

▽유학생, 주재원 모니터링도 사설탐정이=조기유학이 늘어나는 세태가 이 업계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 업체는 4월 기러기아빠 한모(46) 씨에게 “부인과 자녀가 캐나다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아내가 연락이 뜸하고 아들의 통화 목소리도 왠지 이상하다는 이유였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현지 사설탐정이 3일간 한 씨의 가족 주변을 탐문한 결과 부인은 다른 남성과의 만남이 잦고, 고교생인 아들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다녔다. 한 씨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아들은 유학 생활을 중단했다.

기업이 주재원이 심상치 않다며 현지 생활을 알려 달라는 의뢰도 많다. D사는 2004년 초 한 제약회사 홍콩지사의 직원이 카지노에 빠져 판돈 마련을 위해 몰래 제품을 빼돌린 사실을 확인하고 본사에 통보했다.

▽무역 사기도 막는 사설탐정=무역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거래 외국기업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도 줄을 잇는다.

서울의 한 무역업체는 작년 말 미국의 액정표시장치(LCD) 제조회사에서 아주 좋은 제안을 받았다. 가격은 타 업체보다 훨씬 저렴했고 샘플도 A급이었다. 지나치게 좋은 조건이 마음에 걸린 회사 대표는 사설정보업체 B사에 거래기업의 정보 조사를 요청했다.

B사는 미국 마이애미의 연계 사설탐정에게 주소지를 일러 줬다. 확인 결과 공장이 있어야 할 장소에는 엉뚱하게 폐가가 있었다.

그는 다시 면허국에서 대표자의 신원을 조회해 알아낸 회사의 ‘진짜’ 주소로 찾아갔다. 허름한 상가의 4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단 3명의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공장이 5개라던 회사는 중고 LCD를 유통하는 소규모 업체에 불과했다. 계약을 했다면 1억 원의 피해를 보았을 뻔했다.

▽가장 많은 의뢰 유형은 해외도피 범죄인 검거=해외도피 범죄인 추적은 전체 의뢰의 약 60%를 차지한다.

2005년 말 한 업체는 의류 무역회사에서 5억 원을 횡령해 중국으로 도망친 직원 이모(38) 씨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주변 인물을 탐문해 친한 친구가 중국 선양(瀋陽)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업체는 조선족 사설탐정 류모(32) 씨를 고용해 이 씨의 기본정보를 넘겨줬다. 류 씨는 한국인 상가 밀집지역의 한인 마트, 음식점 주인 등에게 이 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의 친구인데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위독해 꼭 소식을 알려야 한다”고 소재지를 물었다.

한 달간 주변 상가를 다닌 끝에 한 사우나에서 “주말에 가끔 방문하는 손님”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의뢰인은 담당 검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검찰은 외교통상부를 거쳐 중국 주재 대사관에 범죄인인도문서를 전달했다. 대사관의 협조 요청으로 중국 현지 경찰이 이 씨를 검거했다.

국내로 송환된 이 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의뢰인은 남은 돈 3억여 원을 돌려받았다.

한 사설정보업체 대표는 “2001년부터 2006년 상반기까지 해외도피 범죄인 3449명 중 검거된 이는 29명(0.84%)에 불과하다”며 “요즘 한탕해서 튀는 사람들이 늘면서 해외도피 범죄인을 찾아달라는 의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설 기자 sno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