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委 “재학생 90%가 중장년… 내년부터 보조금 중단”

  • 입력 2006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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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청주대 학생문화관 4층의 무궁화 야간학교에서 나이든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청주=장기우 기자
충북 청주시 청주대 학생문화관 4층의 무궁화 야간학교에서 나이든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청주=장기우 기자
“어린 선생님들이 힘들게 가르쳐 주는데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버려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니까요.”

8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청주대 내 학생문화관 4층의 무궁화 야간학교(야학). 9월 4일 이 야학에 들어와 한글 기초반에서 받아쓰기 과정을 배우고 있는 이영분(69·청원군 북이면 신기리) 할머니는 대학생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미안함이 앞선다.

고된 농사일을 마친 뒤 집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통학 길은 ‘까막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행복 길’이 된 지 오래다.

이 야학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25명의 학생들이 8명의 대학생 선생님들에게서 배움의 갈증을 풀고 있다. 1976년 출발해 지금까지 112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한 서민들에게 돈 없이도 배움의 기회를 주었던 야학.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키우기 위한 애국계몽운동으로 출발해 지금까지 뿌리를 이어오고 있지만 재정과 인력난 등으로 하나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출범한 전국야학협회(전야협)에 따르면 이 협회에 소속된 160여 개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약 400∼500개의 야학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야학 한 곳에서 배우는 학생을 최대 40명으로 계산하면 약 2만여 명이 공부하고 있는 것.

야학은 대부분 정부 지원금과 외부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1년 소요 예산은 야학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000만 원 안팎이다. 이 가운데 교실 임차료와 공과금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무궁화 야학의 경우 임차료 때문에 지금까지 7차례 이사했다. 최근에는 그나마 나오던 정부 지원금이 내년부터 끊기게 돼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다행히 야학 재학생 중 한 명이 교사들이 재학 중인 청주대 김윤배 총장에게 “야학을 지켜 달라”는 편지를 보냈고, 사연을 접한 김 총장이 9월 학내 7.5평짜리 동아리방 5개를 선뜻 야학교실로 쓰라며 내줘 한숨을 돌렸다.

무궁화 야학의 안대균(27·청주대 법학과 4년) 교장은 “1년에 1000만 원이 넘는 운영비를 어떻게 마련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학교의 배려로 폐교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야학들은 내년 운영비 때문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야학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온 청소년위원회가 내년부터 보조금 지급(2005년 기준 156개)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야학 수강생 중 청소년 비율이 낮아서 청소년육성기금으로 야학을 지원할 근거가 없다는 것.

청소년위는 청소년이 80% 이상을 차지할 때에는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조건을 내걸었지만 현재 전국 대다수 야학 재학생의 90% 이상은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전야협 김동영(53·울산시민학교장) 회장은 “올 초 비상대책위를 만들어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11일 대전에서 각 지역 대표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 등을 강력히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학생 30여 명 중 26명이 40대 이상 중장년층인 청주 심지야학의 김진혁(28·충북대 경영학부 4년) 교장은 “야학 학생 상당수가 중장년층인 만큼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등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정부가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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