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外高는 죄가 없다

  • 입력 2006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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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강남과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 등 일부 중학교 3학년 교실의 풍경이 가관이라고 한다.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입학 열풍 때문이다. 중3 딸아이를 둔 필자가 듣고 보는 이야기만 해도 책 한 권 분량은 될 것 같다. 특목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종례도 마치지 않고 학원버스에 올라탄다. 교실 청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일부 학생은 “가족과 지방으로 여행을 간다”며 가짜 ‘현장 체험학습’을 신청해 학교를 결석하고 학원에서 특목고 입학을 위한 강의를 듣는다. 이런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교사들도 특목고 합격자 수가 학교의 명성을 좌우하는 상황이라 냉가슴만 앓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사교육이 공교육을 ‘점령’했다.

특목고 중에서도 과열 양상을 보이는 곳은 외고다. 과학고는 학교 수 자체가 적고, 과학이나 수학 분야에 어느 정도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입학경쟁률이 그리 높진 않다. 하지만 외고는 학교 수도 제법 되고 대부분 집에서 통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부깨나 한다는 학생은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려 한다.

올해 외고 열풍은 유난스럽다. 서울지역 외고 특별전형 경쟁률은 평균 8.38 대 1로 지난해(6.07 대 1)보다 크게 높아졌다. 내신 비중 강화, 동일계 비진학에 대한 불이익 등 2008학년도 대입제도의 영향으로 한동안 주춤했던 특목고 열기를 재점화한 것은 일차적으로 대학 진학 실적이다. 실제로 2006학년도 서울지역 6개 외고 졸업생 중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진학한 비율은 평균 63%에 이른다. 외고의 교육 여건이 내신 불이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판단의 근거다.

하지만 대학 입학 실적만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외고는 국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까지 끌어 모으고 있다. 올해는 상위권뿐 아니라 중위권 학생까지 특목고 진학 대열에 가담한 양상이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외고 열풍의 진정한 이유는 ‘우수한 교육환경에서 좀 더 나은 교육을 시키(받)고 싶다’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에 대한 갈망이다. ‘우수한 교육환경’이란 이념에 물들지 않은 좋은 교사진, ‘왕따’와 폭력이 없는 학교 분위기, 수준 높은 영어교육, 그리고 서로에게 힘과 자극이 돼 주는 교우관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고 열풍은 명백하게 교육 평준화의 부산물이다.

늘 그렇듯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재 시도교육감에게 주어진 특목고 설립 권한을 법 개정을 통해 회수해서라도 외고 설립을 규제하겠다고 한다. 늘어나는 수요는 고려하지 않고 공급만 막겠다는 발상이다. 정부는 “5·31지방선거 때 외고 설립을 공약으로 내건 지방자치단체가 100곳이 넘었다”며 모든 학교를 외고로 만들어 공교육 체계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외고의 존재를 문제의 핵심으로 보자면 맞는 말이다.

중3 교실까지 파고들어 특목고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의 면학 분위기까지 해치는 학원이나, 자녀를 특목고에 진학시키려고 정상적인 교육과정까지 내팽개치게 하는 학부모나 다 문제다. 특히 교육당국은 특목고 대비 오전반을 운영하는 학원들을 단속해야 한다. 하지만 진단이 명확해야 해법도 제대로 나오는 법이다. 외고 열기는, 그것이 아니면 탈출구가 없는 무너진 공교육 때문이다. 외고는 죄가 없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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