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법원장 발언에 ‘법조3륜’ 초유의 파열음

  • 입력 2006년 9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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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 있다”2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는 정상명 검찰총장의 표정이 무거워 보인다. 정 총장은 이날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강병기 기자
“유감 있다”
2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는 정상명 검찰총장의 표정이 무거워 보인다. 정 총장은 이날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강병기 기자
이용훈 대법원장의 잇따른 직설적 발언이 검찰총장의 사법부 수장에 대한 공식 유감 표명이라는 사법사상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여기에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이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고, 일선 검사들의 반발 기류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검찰총장, 대법원장 발언 조목조목 반박=정상명 검찰총장이 21일 대법원장을 향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발언 수위는 낮았지만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은 이날 정 총장 주재로 대검찰청 간부 12명이 참석한 긴급회의를 열고 ‘유감 표명’의 수위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회의에서는 정면대응 하는 것보다는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을 쓰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 대법원장이 발언 내용보다는 거친 말투 때문에 논란을 증폭시킨 만큼 거꾸로 최대한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역발상’을 한 셈.

그러나 정 총장은 유감 표명 직후 ‘전국 검찰 가족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전국 일선 검사와 직원들에게 e메일 지휘서신을 보내는 형식을 빌려 이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정 총장은 “(대법원장이) ‘검사가 조사한 수사기록을 던져 버리라’고 하셨다는데, 비록 재판의 구술주의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 할지라도 듣기에 민망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당혹스럽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차분히 우리를 반성하고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일선 검사들에게 차분한 대응을 당부했다.

이 대법원장이 내부적으로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자리에서 ‘문제의 발언’을 쏟아냈다는 점을 감안해 정 총장도 내부 직원에게 보내는 e메일 형식을 취한 것. 특히 지휘서신에 사용된 표현은 이 대법원장의 직설적인 화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제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일선 검사들 폭발 일보 직전=이 대법원장의 검찰을 겨냥한 일련의 발언은 최근 주요 사건에서 구속과 압수수색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격앙돼 있던 일선 검사들을 더욱 자극했다.

정 총장이 이날 지휘서신을 통해 신중한 언행을 당부한 것도 자칫 일선 검사들의 집단 반발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

이날 검찰 내부통신망에는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비판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다.

박용석 대전지검 차장은 “표현의 방식이 참으로 삭막하기도 하고 막말 또는 험한 말이라 우려스럽다”며 “막말이나 험한 말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코드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법원장께서 이런 시대의 코드에 맞추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강영권 서울서부지검 전문부장검사도 ‘수사기록은 함부로 내던지는 물건이 아니다’는 글을 올려 “수사기록은 검찰의 땀과 혼이 배어 있는 작품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도 되는 쓰레기 같은 물건이 아니다”며 “검찰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는 듯해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날 내부통신망의 게시판에는 “사법부 수장이 막말을 해도 되느냐” “법원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렸다” “사법부를 제외하고 법조 2륜이라고 부르는 것에 찬성한다”는 등의 글이 잇따랐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발언 내용 자체보다 발언에 깔린 인식이 지극히 법원 중심적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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