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논술은 만능이 아니다

  • 입력 200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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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계획이 발표되자 교육계가 다시 떠들썩하다. 2008학년도부터 크게 바뀌는 대학입시는 학교생활기록부, 대학수학능력시험, 논술이 3대 축을 이룬다. 관심은 어느 쪽을 얼마나 많이 반영하느냐에 모아진다.

서울대를 공격하는 측은 학생부를 많이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가 치르려는 논술시험이 본고사를 부활시키는 것과 다름없으니 입시계획을 철회하라고 윽박지른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대가 논술시험을 본고사처럼 치르려는 게 나쁜 뉴스”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교육 당국은 “서울대와 새 입시안을 놓고 협의 중”이라고 밝히면서 학생부를 많이 반영하라는 압력에 가세한다. 서울대만 통제할 수 있으면 다른 대학들도 손 안에 쥘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서울대의 반응은 좀 뜻밖이다. 대학 자율에 맡겨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은 채 서울대가 학생부를 적게 반영하는 게 아니라고 해명한다. 2006년 입시에서 학생부 성적이 논술시험에 비해 2배 이상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를 내놓는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들 사이에 오가는 ‘말의 공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부 발표만 믿고 있다가 입시에서 낭패를 봤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5월 ‘국정브리핑’에 ‘2008년 대입제도 바로 알자’라는 글을 실었다. 여기에 정답에 가까운 내용이 담겨 있다. 학생부, 수능시험, 논술이라는 세 가지 전형요소 중에서 어떤 것이 합격에 더 큰 영향을 미칠지는 오직 입시가 끝난 뒤에야 알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 입시는 상대적인 경쟁이라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놔두고 벌써부터 학생부가 중요할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사교육비 지출은 학부모의 불안감에 비례한다. 수능시험 역시 소홀히 할 수 없으므로 새 입시제도는 태생적으로 사교육비 부담을 늘리게 돼 있다. 이런 제도를 만든 참여정부는 사교육비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그래도 논술에 대한 기대치는 제법 있다. 대학들은 정부의 입시 규제를 피해 논술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고등학교에서도 논술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으니 교육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표현력 사고력 창의력은 논술에 의해 길러질 수 있는 중요한 능력들이다.

하지만 논술이 우리 교육의 구원투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다.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영국의 A레벨, 독일의 아비투어 같은 선진국의 대입 학력시험에도 논술이 들어 있으나 주관식 시험이기 때문에 채점의 공정성이 늘 문제가 된다.

어느 대학의 논술 관리를 맡고 있는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사전에 교수들끼리 모의채점을 해 보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지만 같은 논술 답안지라도 교수에 따라 매긴 점수 차가 많이 나서 걱정”이라고 했다. 교수들마다 높은 점수를 주는 기준이 다른 것도 문제다. 대학들이 이 난제를 어떻게 극복해 갈지 궁금하다. 논술은 여러 평가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2008학년도 입시는 수능시험이 도입된 1994년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당시 학생들은 학생부, 논술, 대입학력고사 세 가지로 입시를 치렀다. 수능시험이 이번에 등급제로 바뀌면서 대입학력고사와 마찬가지 형태가 됐다. 정권은 새 제도를 만든 것처럼 내세우지만 입시에서 뾰족한 방법은 없다. 몇 가지 전형요소 가운데 어떤 때는 한쪽에 높은 비중을 두고 어느 때는 다른 요소를 강조하는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기세등등하게 나와도 대학들은 입시의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안 해도 될 싸움, 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정부가 나서서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이 노리는 건 유권자의 ‘표’일 테지만 이런 포퓰리즘에 속지 않는 것이야말로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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