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박지원의 ‘열하일기’

  • 입력 2006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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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덧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러날 것 같지 않던 더위는 물러나고, 다가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지금. 시원한 바람 속에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여러분과 함께 여행할 ‘소피’는 요즘 ‘비빔밥’ 생각에 푹 빠져있답니다. 갖은 야채와 반숙(半熟)으로 구운 달걀, 그리고 군침을 돌게 하는 고추장 양념이 맛깔 나게 어우러진 비빔밥 한 그릇이 소피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소피를 사로잡은 비빔밥은 눈과 정신으로 먹는 ‘색다른’ 비빔밥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비빔밥을 만들어 줄 오늘의 요리사는 연암 박지원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요리사지요. 그런데 혹시 여러분은 ‘연암(燕巖)’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요? 한자말 그대로 풀이를 하자면 제비(燕)바위(巖)입니다. 박지원은 1771년(정조1년)에 홍국영의 세도 정치를 피해 황해도 금산 지방에 있는 연암골(燕巖峽, 제비바위 골짜기)로 몸을 피하게 됩니다.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지원의 눈에는 연암골의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그때 이후 박지원은 ‘연암’이라는 호를 사용하게 됩니다. ‘호’(號)가 뭐냐고요? ‘호’는 본래 이름 이외에 허물없이 쓰기 위하여 지은 ‘또 다른 이름’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박지원은 조선 후기 북학파의 우두머리이기도 하지요. 이 자리에서 굳이 북학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북학(北學)’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여러분의 지(知)적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연암 박지원은 1780년(정조4년)에 청나라 황제의 칠순 잔치를 축하하는 사신 행렬에 동행하게 되면서, 청나라의 문물(文物)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바로 ‘열하일기’입니다. 바로 오늘 소피와 함께 맛볼 ‘비빔밥’은 열하일기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쓴 일기를 다른 사람이 함부로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마 대부분의 친구들은 기분이 나빠질 겁니다. 그만큼 일기는 주관적인 글이고,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비밀’이 담겨있는 글이니까요.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자신이 쓴 일기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권합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의 일기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훔쳐볼 만한 그 무엇이 없어서 편안하게 공개한 걸까요? 1805년에 세상을 훌쩍 떠나버린 박지원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자꾸만 묻고 싶어집니다. “연암 선생님, 왜 일기를 온 세상에 공개하신 거죠?”라고요. 이쯤에서 그가 남긴 1780년 8월 4일 일기의 한 자락을 슬쩍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8월 4일.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여한이 없을 일이거든!”

8월 4일은 연암 박지원이 북경에서 맞는 셋째 날입니다. 삼복더위만큼이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연암은 문득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 모양입니다. 세상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한숨 소리가 들리는 지금, 여러분도 혹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럼 이번에는 다른 일기를 살펴볼게요.

“8월 7일. 열하를 향해 달린 지 사흘째. …어스름할 녘에 다시 길을 떠나 고북구에서 술 한 잔을 사 먹고, 새벽 술참으로 샀던 술로 먹을 갈아서는 별빛 아래서 만리장성 벽에다 이름을 새겼다.”

8월 7일의 일기에는 연암 박지원의 소박한 인품이 나타나 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가끔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돌아오는 것처럼, 연암 박지원도 역시 만리장성에 이름을 쓰고 있네요. 새벽에 마시려고 샀던 술로 먹을 갈아서 글을 쓰고 있는 달빛 아래의 연암 박지원의 모습, 한 폭의 그림 같지 않나요? 연암 박지원은 ‘멋’과 ‘맛’을 아는 선비였나 봅니다.

그런데 8월 7일은 연암 박지원에게 무척 뜻 깊은 날입니다. 왜냐고요? 바로 이날 연암 박지원은 강물을 무려 아홉 번이나 건너게 되거든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 바로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넌 이야기)입니다. 아마 8월 7일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토록 유명한 ‘일야구도하기’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면서 느꼈던 사실들, 그리고 그로부터 얻게 된 깨달음이 잘 녹아 있는 ‘일야구도하기’는 중수필(essay)입니다. 이렇게 보니 열하일기에는 ‘일기’뿐만이 아니라, ‘수필’도 들어있네요. 그럼 여기서 연암이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지요.

“나는 오늘에야 이치를 알았다. 마음의 눈을 감은 자는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을수록 보고 듣는 힘이 밝아져서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깨달았나요? 그런데 연암 박지원이 건넌 강은 도대체 무슨 강일까요? 정답은 ‘열하일기’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열하일기>에는 “이놈의 선비, 에이, 구린내야!”라고 말하며 잘못된 양반을 꾸짖는 호랑이 이야기도 있고요, 조선의 경제를 한 손에 쥐고 흔든 ‘허생’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기와는 사뭇 다른 소설과 비슷한 글이지요. 이처럼 ‘열하일기’는 다양한 ‘음식’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비빔밥과 같습니다.

이제 조선 후기 최고의 북학 요리사 연암 박지원 선생이 만든 비빔밥, ‘열하일기’ 한 그릇 드시지 않을래요?

황성규 학림 논술 필로소피 논술 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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