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재 빌려주는 ‘과학은행’ 아시나요

  • 입력 2006년 8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덕성여대 신승원(약학과) 교수팀은 최근 약용식물에서 항균성분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신 교수팀은 서울여대 등에 있는 ‘세균은행’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필요한 세균을 검색해 신청했다. 며칠 뒤 연구실로 밀폐 용기에 들어 있는 세균이 배달됐다. 사업자금이 필요한 기업가가 은행을 찾는 것처럼 연구에 쓸 소재가 필요한 과학자도 ‘은행’을 이용한다. 다만 과학계의 은행은 ‘돈’을 취급하는 곳이 아니다. 그 대신 ‘연구소재’를 보관하고 제공한다. 고객, 직원, 은행장이 모두 과학자라는 점도 일반 은행과 다르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등 전국 18개 대학에는 이런 ‘과학은행’이 32개나 있다.》

○ 미생물 화학물질 등 ‘특화’

소재은행에는 미생물, 유전자, 화학물질 등 연구에 사용하는 갖가지 재료가 보관돼 있다. 신 교수처럼 항생제를 개발하려는 과학자에게 효능실험용 세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문제는 개발한 성분이 수많은 세균 중 어떤 종류에 효능을 보일지 모른다는 데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약화학연구센터 김동진 박사는 “수십, 수천 종의 세균을 대상으로 실험해야 하는데 이를 소재은행에서 빌리지 않고 모두 기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항생제내성균주은행장인 서울여대 이연희(환경생명과학부) 교수는 “한 달에 10∼20명의 연구자가 우리 은행에서 세균을 받아 간다”고 말했다.

○ 연구하며 모은 소재 무료 제공도

부산대 정세영(나노과학기술학부) 교수는 학생 때부터 만든 ‘단결정’을 모아 2003년 단결정은행을 설립했다.

단결정이란 내부 구성 성분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순수한 고체. 사파이어나 루비 같은 보석, 투명한 소금 등도 단결정이다. 시계나 반도체 같은 전자기기 부품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정 교수는 “우리 은행에 보관 중인 단결정은 자그마치 1만여 개”라고 귀띔했다.

이 은행은 1년에 2000여 개의 단결정을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 등에 제공한다.

인천대 이태수(생물학과) 교수는 10여 년간 발품 팔아 모은 버섯 균주로 2002년 야생버섯균주은행을 설립했다. 균주는 현재 3000여 종.

이 교수는 “7월 말까지 암, 노화, 심장혈관질환 관련 연구자들에게 무료로 균주를 제공한 것이 4000건을 넘는다”고 말했다. 이 정도의 양을 수입했다면 2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설립된 생물음향은행에는 경상대 연성찬(수의학과) 교수가 1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녹음한 동물 소리가 3000여 개의 음향 파일로 보관돼 있다.

현재 국내 소재은행들이 확보한 연구소재의 99%는 국산이다.

소재은행에서 연간 50억 원 이상의 연구재료 수입 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게 과학계의 추산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