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생이별… 암흑속 80시간

  • 입력 2006년 7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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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야, 미소야!”

18일 오후 김남성(44·강원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씨가 11, 10세 연년생 딸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다. 딸들은 아빠 품에 안겨 흐느꼈다. 나흘간 생이별을 해야 했던 김 씨 가족은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15일 오전 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뒤 도사리엔 산사태가 일어났다. 엄청난 양의 빗물과 토사가 쏟아져 내리면서 가옥 5채가 무너지고 12채가 물에 잠겼다. 급기야 도사리로 들어가는 유일한 도로마저 10km가 끊어지면서 57가구, 200여 명의 주민은 완전히 고립됐다.

물이 점점 차오르자 주민들은 서둘러 고지대에 있는 이웃집들로 대피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김 씨 부부와 도사리 이장 고광배(37) 씨 부부, 김미자(36·여) 씨 부부는 자신들의 안위보다 아이들 걱정이 앞섰다.

마을에 전기가 나가더니 휴대전화도 먹통이 됐다. 잠시 후 유선전화마저 끊기자 아이들의 소식을 접할 길이 없었다. 이들은 신호도 가지 않는 전화기만 붙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들의 자녀 6명은 이날 학교 수업이 끝났지만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학교 버스는 도로가 끊겨 아이들을 마을 어귀에 내려놓고 방향을 돌렸다. 갈 곳 잃은 아이들은 이웃 마을 주민들이 돌봐 줬다. 하지만 아이들 역시 부모의 생사를 알지 못해 애간장을 태웠다.

도사리 주민들은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했다. 마을 청년들은 우선 저지대에 사는 노인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또다시 산사태가 날지 몰라 남자들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주민 김남근(54) 씨는 “밤에 ‘쿵’ 하는 소리만 나도 천둥소리인지 산이 무너지는 소리인지 몰라 가슴을 졸였다”며 “이웃이 없었으면 나흘 동안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쌀과 라면이 떨어지자 주민들은 아직 알이 굵지 않은 감자로 끼니를 때웠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식수를 댔던 터라 전기가 끊기면서 마실 물도 없었다. 이들은 빗물을 받아 마시며 악몽 같은 시간을 견뎌냈다.

18일 빗줄기가 약해지자 주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자 포대를 들고 나섰다. 포대에 모래를 가득 담아 제방을 쌓고 길을 놓았다. 용평면사무소에서도 굴착기를 지원해 이날 오후 6시가 돼서야 이들은 폐허가 된 마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미래와 미소 양은 물이 빠진 집으로 향하며 아버지 김 씨에게 “또다시 산사태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스레 물었다. 김 씨는 “아빠가 있지 않느냐”며 딸들의 손을 꼭 쥐었다.

강원지역에는 19일 현재 평창 5개 마을 620명, 인제 3개 마을 431명, 정선 2개 마을 31명 등 3개 군 10개 마을에 1082명의 주민이 여전히 고립돼 있다.

한편 도사리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평창군 도암면 용산리 용평리조트도 이번 수해로 큰 피해를 봐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비상이 걸렸다.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관계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내년 2월 실사를 벌이는데 남은 7개월 동안 복구 및 보수공사를 모두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는 내년 7월 4일 IOC 과테말라 총회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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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춘천=최창순 기자 cs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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