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사태로 국민 피해” 이례적 중형…1심서 징역10년

  • 입력 2006년 5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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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미옥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미옥 기자
“피고인에게 징역 10년과 21조 원을 추징한다.”

자신의 운명을 이미 짐작했던 탓일까. 김우중(69) 전 대우그룹 회장은 중형 선고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다만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에 움츠러든 어깨가 더 수그러들 뿐이었다. 노쇠한 몸에 하얀 환자복을 걸친 그에게서 30년을 넘게 오대양을 누비며 세계 경영을 진두지휘하던 그룹 총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법정 방청석은 크게 술렁였다.

▽이례적 중형=법원이 김 전 회장에 대해 예상을 뛰어넘는 중형을 선고한 것은 경제사범에 대한 사법부의 엄단 의지를 거듭 보여 준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은 이른바 ‘대우사태’의 책임이 총수인 김 전 회장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20조 원대의 분식회계와 9조8000억 원의 사기대출 △해외 비밀계좌를 통한 재산 국외 밀반출 △계열사 부당 지원 등의 혐의가 모두 김 전 회장의 지시로 이뤄졌고, 임원들에게서 이와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고 판단했다.

선고 직전까지 법원 안팎에선 김 전 회장이 고령이며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점에서 선처를 예상했다. 김 전 회장 측도 대기업 총수들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던 선례가 적용될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의 혐의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 전제인 경제 구성원 간 신뢰를 무너뜨렸고 이로 인해 상당수 국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중형을 선고했다.

2월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관련자 전원에 대한 1심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를 이용훈 대법원장이 강하게 비판한 후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원의 엄한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이 대법원장은 “절도범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기업범죄에 대해선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다면 국민이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개 숙인 김 전 회장=김 전 회장은 공판 시작 15분 전인 오후 1시 45분경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다 법원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환자복 차림으로 피고인석에 섰다. 200석 규모의 방청석은 가득 찼고 서 있는 방청객도 있었다.

그는 재판 진행 중에도 링거를 맞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남식 주치의와 간호사 2명이 법정에서 대기했다.

김 전 회장은 재판부의 선고가 끝나자 고개를 숙였다. 그는 방청석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법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서둘러 법정을 나섰다. 김 전 회장은 차에 타기 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추징금 실효성은?=재판부는 김 전 회장에게 역대 최대 규모인 추징금 21조4484억 원을 부과했다.

이 추징금은 김 전 회장이 한국은행 등에 신고하지 않고 해외로 빼돌린 돈(157억 달러, 40억 엔, 1133만 유로)과 해외 법인의 돈을 국내로 반입하지 않은 돈(32억 달러)을 합친 액수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같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대우 임직원 7명과 함께 이 추징금을 공동 부담하면 된다.

추징금을 집행하는 검찰은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집행2과 직원 5명으로 ‘대우 추징금 대책팀’을 구성했다. 대책팀은 김 전 회장이 1990년 7월 가족을 위해 미국 보스턴에 80만 달러를 들여 주택 한 채를 사는 등 재산을 국내외에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 전 회장 측은 전 재산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해 빈털터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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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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