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트루먼 쇼

  • 입력 2006년 5월 2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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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를 이야기해 볼게요. 배꼽을 잡고 웃다 보면 어느새 코끝이 찡해지는 마력을 가진 이 영화는 속 깊은 곳에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숨기고 있는데요. 바로 ‘진정한 나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죠. 그런데 여러분, 주인공 트루먼을 너무 불쌍하게 볼 필요도, 너무 대단하게 볼 필요도 없어요. 트루먼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니까요.》

트루먼은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익사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그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자신의 섬 마을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매일매일 평온한 삶을 살고 있어요.

하지만 알고 보면 트루먼은 하루 24시간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생중계되는 몰래카메라 쇼의 주인공이었죠. 수천 개의 몰래카메라가 숨겨진 거대한 스튜디오에 자신이 살고 있는 줄도 모르는 트루먼.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에 찍혀 왔던 것이죠.

어느 날 트루먼은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다가 자신의 행동이 생중계되고 있는 목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자기 삶을 송두리째 의심하기 시작해요. 급기야 그는 물 공포증과 맞서면서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건넙니다. 결국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죠.

트루먼은 ‘진짜 삶’을 살고 있었던 걸까요? 트루먼 쇼를 보는 전 세계 17억 명의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삶을 ‘진짜(reality)’라고 여기지만, 트루먼의 관점에서 볼 때는 결코 ‘진짜 삶’이 아니었죠. 그에겐 세상(즉 거대스튜디오)이 흠잡을 때 없이 평온했지만, 그건 그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트루먼은 안온한 ‘가짜 삶’보다 거짓과 위선과 위험이 도사리는 ‘진짜 삶’을 선택해요.

‘트루먼 쇼’의 주제어는 유식한 말로 ‘실존(實存·existence)’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됨으로써 결국 주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투쟁을 그렸으니까요. 사실 영화의 제목에 벌써 답이 숨겨져 있어요. 주인공 이름인 ‘트루먼’은 ‘트루(true·진정한)+맨(man·인간)’, 즉 ‘진정 존재하는 인간’ 혹은 ‘실존하는 인간’을 뜻하잖아요?

“왜 트루먼은 지금까지 (자신이 거대 스튜디오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하고 방송 진행자가 묻자 트루먼 쇼의 연출가인 크리스토프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지죠. “We accept the reality of the world with which we're presented.” 다시 말해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만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여러분은 ‘현실(reality)’을 어떻게 인식하나요? 우리가 매일 매일 경험하는 사람들과 사건을 토대로 어떤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죠. 그리고 나선 그 그림을 바탕으로 해서 현실을 재구성해요. 결국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각기 주어진 환경을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신의 현실이자 ‘세계 전체’로 받아들이는 거죠. 마치 트루먼이 자신이 30년간 살아온 초대형 스튜디오를 현실이자 세계로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죠.

결국 영화는 누구나가 진실이라고 믿는 ‘리얼리티의 세계’가 언제라도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가 하도록 이끌죠. 콜럼버스가 목숨을 건 항해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밝혀내니까, 당시까지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어 왔던 ‘진리’가 하루아침에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 버렸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 자신에게도 트루먼이 가졌던 ‘물 공포증’과 비슷한 어떤 것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예를 들면 ‘난 수학은 절대로 잘할 수 없어’ 같은 두려움 말이죠. 트루먼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 안의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설 때 새로운 가능성은 열립니다.

트루먼의 아내 메릴은 시청자들에게 말해요. “전 사생활(private life)과 공적인 생활(public life)의 구분이 없어요.” 대학시절부터 트루먼 곁을 맴돌면서 급기야는 아내가 되어 한 지붕, 한 이불 밑에서 지내며 살아가는 그녀의 인생을 공적인 ‘연기’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개인적인 ‘사생활’로 봐야 할까요.

영화는 여기서 ‘미디어 상업주의’를 비꼬아요. 메릴은 시청자들을 의식한 나머지 남편 앞에서조차 마치 ‘미인대회용’인 것 같은 가식적인 웃음과 표정과 포즈를 연발하죠. 절친한 친구는 특정 맥주 브랜드를 은근슬쩍 간접광고하기 바쁘고요.

요즘 넘쳐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트루먼 쇼’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 없어요. 부부가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다투는 실제 장면들, 아들이 어머니를 때리는 패륜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들은 제2, 제3의 ‘트루먼 쇼’죠. 세월이 흐를수록 ‘개인’의 영역은 줄어들고, 사생활조차 상품화되어 시장에서 ‘팔리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요.

혹시 트루먼의 삶을 속속들이 감시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가 움직여 주길 바라는 트루먼 쇼의 연출가 크리스토프는 전체주의 국가의 독재자와 다를 바 없는 건 아닐까요? 혹시 트루먼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내려다보면서 때론 천둥과 번개로, 때론 폭풍우로 트루먼에게 고통과 시험을 안기는 크리스토프는 전지전능한 신(神)과 같은 존재는 아닐까요?

트루먼과 크리스토프의 관계를 ‘국민과 전체주의 국가의 독재자’ 혹은 ‘인간과 신’의 관계로 풀어내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보세요. 이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영화에서 트루먼을 진심으로 동정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여자 실비아 기억하시죠? 그녀는 트루먼에게 이렇게 말하죠. “If we don't go now, it won't happen(지금 당장 실행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어).”

여러분,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시도하세요. 혹시 아나요? 트루먼처럼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리게 될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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