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건 수사결과 발표]‘연구비 빼돌리기’ 전문가 수준

  • 입력 2006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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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했을 분이 (돈세탁까지 하느라) 무척 바쁘셨겠더라.”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연구비 사용 실태를 조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의 비아냥거림이다.

황 전 교수는 친인척 명의로 개설한 64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정부지원금과 민간후원금을 관리했다.

돈 세탁을 거쳐 만든 비자금은 대부분 현금으로 사용했다. 속칭 ‘환치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만든 비자금은 부인의 차량 구입, 여야 정치인에 대한 후원금, 선물 구입에 사용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참 바쁘셨겠다”=황 전 교수는 지난해 7월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SK㈜ 관계자에게 “연구비 지원을 받고 싶다”고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과시하며 줄기세포가 상용화되면 SK㈜에 우선권을 주겠다며 5년간 매년 15억 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식으로 지원받은 민간 후원금을 빼내 자금 세탁을 거쳐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는 친인척, 고교 친구, 연구원 등의 계좌 수십 개가 동원됐다. 이들에게 현금 입출금을 반복시켜 자금 추적이 어렵게 한 것.

황 전 교수는 특히 5000만 원 이상의 현금이 한꺼번에 인출되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된다는 점을 피하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을 돌며 1000만∼3000만 원 단위로 현금을 인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큰 가방을 들고 직접 현금을 인출해 하루에만 억대의 돈을 만들어 곧바로 차명계좌에 전액 입금한 경우만 4, 5차례나 발견됐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지난해 9월에는 재미교포 강모 씨 계좌에 2억 원을 입금한 뒤 11월 미국에 가서 강 씨에게서 20만 달러가량을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전형적인 환치기 수법이다.

▽연구비는 내 맘대로?=검찰이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밝혀낸 황 전 교수의 횡령 금액은 6억4200만 원 정도다. 그러나 검찰은 실제 횡령 액수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황 전 교수는 민간지원금 등에서 조성한 비자금 중 2001년 8월 1억4000여만 원, 이듬해 3월에는 224만 원을 인출해 후원자들에 대한 답례용 선물 구입비용으로 사용했다. 2004년 9월에는 부인 명의의 SM5 승용차 구입 대금으로 2688만 원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6월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여야 정치인 수십 명에게 건넨 공식 후원금만 5490만 원에 이르고, 논문 조작 사건이 불거진 지난해 12월 이후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연구원들에게 2억9000여만 원을 나눠 주기도 했다.

▽이병천, 강성근 교수도 동참=황 전 교수팀의 핵심 멤버였던 이병천(李柄千) 교수도 황 전 교수와 짜고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약품회사나 소모품 업체 사장에게 부탁해 물품을 구입한 것처럼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아 연구비를 빼돌렸다.

연구과제별로 책정된 인건비도 연구원에게 지급해야 하지만 황 전 교수팀은 2, 3개월에 한 번씩 연구원들의 통장에 입금된 연구비를 인출해 이 교수와 강성근 교수 계좌로 송금받아 가로챘다. 이런 방식으로 황 전 교수와 이 교수가 챙긴 민간연구비는 5000만 원, 이 교수가 빼돌린 정부지원 연구비는 2억4600만 원, 강 교수가 가로챈 정부지원 연구비는 1억1200만 원으로 파악됐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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