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새 생명 준 아내가 없었다면…"

  • 입력 2006년 5월 5일 1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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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신장 맞바꾼 부인덕에 성공적 이식수술로 건강을 되찾은 박룡운씨. 남원상기자
타인과 신장 맞바꾼 부인덕에 성공적 이식수술로 건강을 되찾은 박룡운씨. 남원상기자
"아내가 없었다면 전 죽은 목숨이죠."

박룡운(46) 씨는 남에게 신장을 주고 자신에게 새 생명을 찾아준 부인 김순길(43) 씨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중국 옌벤(延邊) 출신 조선족인 박 씨는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던 김 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 1500만 원을 들여 1997년 9월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박 씨는 막일을 전전하면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한 평 남짓한 냉골 판잣집에서 라면 1개로 하루를 버티다 1999년 12월 만성신부전증에 걸렸다.

그는 한 번에 150만 원이 드는 신장투석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병은 악화됐고 시력까지 떨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 김 씨는 2000년 3월 남편 곁으로 달려왔다. 김 씨는 골다공증 때문에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남편의 투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식당에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김 씨는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의 교환 이식 기증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하지만 김 씨는 골다공증을 앓고 있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장기를 내 줄 수가 없었다.

절망에 빠진 박 씨 부부에게 희망의 손길이 닿았다. 성립교회 유병철 목사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진료 봉사단체 라파엘클리닉이 이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2002년 두 다리에 인공뼈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김 씨는 지난해 8월 25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했다. 남편 박 씨는 김 씨가 신장을 기증하기 하루 전 또 다른 사람의 신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박 씨는 한 달에 약값만 100만 원 가량을 들여야 한다. 또 고향에서 심장질환을 앓으면서 부모가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는 대학생인 딸 영애(22) 양의 병원비와 생활비도 벌어야 한다.

박 씨 부부가 장판 마감일과 가정부 생활로 버는 돈은 하루 4만 원 정도다. 박 씨는 8년 넘게 보지 못한 딸의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박 씨는 이를 악물면서도 밝게 웃었다.

"내게 생명을 준 아내와 삶의 희망인 딸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죠."

■"장기이식 기회 많지 않다"…장기이식 대기자의 '현재'

국립장기이식센터에 등록한 장기이식 대기자는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힌 뇌사자의 현황이 의사와 환자 가족의 무관심으로 이식센터에 잘 통보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장기이식를 놓치고 있다.

장기이식 대기자는 2004년 1만 3100명에서 올해 4월 현재 1만 5647명으로 늘었다. 내장 기관과 골수, 각막 등이 장기 이식 대상이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등은 순수한 기증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가족 사이의 이식을 제외하면 남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장기이식 대기자에게 뇌사자의 장기 기증은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의료계는 사망자의 1% 정도를 뇌사자로 추정한다. 24만 5771명이 숨진 2004년의 경우 뇌사자는 2400여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해에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86명에 불과했다.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평균 4개의 장기를 제공했다. 뇌사자 2400여 명이 1만 2000명에 가까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은 '장기 기증을 절대 거부한다'는 의사 표시가 없다면 뇌사자가 장기 기증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본다. 또 미국과 영국 등은 의사가 뇌사 판정시 가족에게 장기 기증 의사를 묻도록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윤완준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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