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백혈병 태현이의 소원

  • 입력 2006년 4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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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태현이는 12일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고 천문대 나들이를 했다. 태현 이 가족은 이날 길가에 핀 들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박영대 기자
아빠와 함께
태현이는 12일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고 천문대 나들이를 했다. 태현 이 가족은 이날 길가에 핀 들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박영대 기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백혈병을 앓는 이태현(7) 군의 어머니 송금영(38) 씨는 아들이 희귀 백혈병에 걸린 것도, 힘겨웠던 투병 생활도, ‘메이크어위시’재단이 마련해 준 이벤트도 모두 꿈만 같다고 했다.

태현이 가족에게 악몽이 시작된 것은 2003년 초. 태현이는 조금만 부딪혀도 쉽게 멍이 들었고 멍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자책하지 마세요. 그냥 운이 없을 뿐이에요.”

주치의는 아들의 병명을 알려 주며 이렇게 말했다. 송 씨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해 1월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같은 해 3월 동생 승빈(5)이의 골수를 이식했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태현이의 면역력은 떨어졌다. 송 씨는 언제부턴가 “아이를 고통 없이 데려가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두 달 뒤 2차 골수이식 수술. 다행히 결과가 좋아 태현이는 7개월 만에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초 태현이는 폐렴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태현이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지난해 8월. 같은 해 봄 우연히 병원에서 홍보물을 보고 메이크어위시재단에 아들의 사연을 접수시켰는데 답신이 온 것이다.

“동생 승빈이와 함께 별을 보고 싶어요. 친구들에게 별을 보여 줄래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요.”

태현이는 재단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단은 천체망원경을 선물하기로 했다. 태현이 가족이 12일 찾은 경기 양평군 청소년수련원 입구엔 ‘태현이 가족을 환영한다’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날 수련원은 오로지 태현이 가족을 위해 꾸며졌다.

태현이와 승빈이는 잇달아 탄성을 내질렀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 이들 부모는 만나는 사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태현이 가족은 직접 별을 보려고 수련원 옥상에 설치된 천문대로 올라갔다. 잔뜩 낀 구름 때문에 달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청소년수련원 정창영(鄭昌泳·68) 원장은 태현 이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정 원장은 7년 전 장손을 백혈병으로 잃은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마지막 소원은 바다를 보는 것이었어요. 부모가 아이를 차에 태우고 대관령을 넘어 동해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아이가 숨졌습니다. 한 아이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엄마 함께 이겨내요”
“엄마, 건강하세요. 엄마도 힘든 거 알아요. 우리 같이 이겨 내요.” 별나라를 보고픈 소원을 이루기 하루 전에 태현이는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꿋꿋함을 보였다. 박영대 기자


태현이 가족은 다시 강당에 모였다. 태현이의 2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백혈병 아이에겐 골수이식을 받은 날이 또 하나의 생일이다. 태현이는 하루 종일 손에 꼭 쥐고 있던 편지를 읽었다.

“엄마, 사랑해요. 밥 잘 먹그게요(먹을게요). 아나풀게요(안 아플게요). 엄마도 건강하세요. 우리 같이 이겨내요. 나는 우리 가족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도 믿지. 우리 가족 파이팅!”

이 재단의 자원봉사자들과 수련원 관계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눈을 마주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송 씨는 “그렇게 울고도 또 눈물이 나온다”며 억지웃음을 지으려 애썼다.

“태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겠죠. 또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늘 이렇게 감사하며 살게요.”

태현이는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8층 아이들이 빨리 나아 저처럼 퇴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8층은 태현이가 입원했던 병원의 소아암 병동이 있는 층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난치병 어린이에 생애 최고 감동을”

■ 메이크어위시 재단은

“생애 최고의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는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모토다. 이 재단은 다른 봉사단체와 달리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하지 않는다. 희귀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줄 뿐이다.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 갖고 싶은 직업 등 여러 소원을 잠시나마 들어준다. 가끔 선물을 할 때도 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벤트가 함께 마련된다.

이 재단은 1980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 살던 백혈병 어린이 크리스(당시 7세)의 꿈은 경찰관이었다. 그는 지역 경찰서의 도움으로 하루 동안 경찰관 체험을 한 뒤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모는 크리스가 누구보다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실제 소원을 이루면 삶의 의지가 강해져 병마를 이겨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희망만큼 훌륭한 치료약은 없기 때문이다.

메이크어위시 재단은 미국를 비롯해 전 세계에 104개 지부를 두고 있다. 2002년 12월 설립된 한국지부는 지금까지 216명의 꿈을 이루어 줬다.

이 재단 한국지부 서범석(35) 자원봉사팀장은 “소원을 이룬 아이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한국지부는 올해 250명의 어린이에게 희망을 선물해 줄 계획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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