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변신은 있어도 은퇴는 없다”…당당한 ‘현역문화재’

  • 입력 2006년 3월 1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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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소문동 37. 1928년 이 터에 현대적 양식의 경성재판소가 지어졌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이후에는 법 적용의 잘잘못을 따지는 최고법원으로 사용됐던 이 건물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서울시는 광복 후 대법원을 거쳐 2002년 시립미술관으로 활용 중인 이 건물의 아치형 현관이 대법원의 상징성을 잘 담고 있다고 평가, 2일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등록문화재는 근·현대(개항기∼6·25전쟁 전후) 형성된 것 중 보존과 관리가 필요한 문화유산을 말한다. 있는 그대로 영구히 보존하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외관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박제된 문화재가 아닌 사람과 호흡하는 문화재인 셈. ▽근대가 현대로 이어진다=서울에는 옛 대법원청사, 혜화동 성당, 공민왕 사당, 옛 민형기 가옥, 옛 미국문화원 등 2일 등록된 5건을 합쳐 모두 34건의 등록문화재가 있다. 1938년 당시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벽 구조, 스팀 난방시설을 갖춘 최신식 학교건물이었던 종로구 화동 옛 경기고교. 학교가 1975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하면서 현재는 운치 있는 정독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경성의 대공연장으로 1935년 지어진 중구 태평로 부민관(府民館)은 광복 이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됐다. 1975년 국회가 여의도에 자리 잡으면서 서울시의회가 건물의 정신을 잇고 있다.

1938년에 지어진 중구 을지로 미쓰이(三井)물산주식회사 경성지점 건물은 미문화원을 거쳐 현재 시청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민에게 가까이 가는 문화재=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을 기다리는 등록문화재도 있다. 성북구 동선동에 있는 권진규 아틀리에는 1959년 한국의 1세대 조각가 권진규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한 뒤 1973년 생을 마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한 장소다. 당시의 작업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누이동생 권경숙 씨가 기념공간으로의 활용을 검토 중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으로 설립돼 한국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업시설인 ‘경성방직’의 옛 사무동. 경방은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건물을 근대 산업사를 보여 주는 박물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 밖에 종로구가 매입한 홍파동 홍난파 선생 가옥과 누하동 이상범 화백 가옥은 내년 초면 각각 공연장과 기념관으로 시민을 찾아간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등록문화재: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이나 활용을 위해 조치가 필요한 것을 폭넓게 등록해 소유주의 자발적인 보호에 기대하는 제도.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건물을 수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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