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넘으면 입양 원해도 할 수 없다니… 입양 가로막는 장애들

  • 입력 2006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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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때문에 동생이 없어요.” 남자 아이를 공개 입양한 연극배우 윤석화 씨는 부모가 50세를 넘으면 입양이 불가능한 법 때문에 더는 입양을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윤 씨의 네 살배기 아들 김수민 군에겐 동생이 없다. 윤 씨와 수민 군. 사진 제공 윤석화 씨
“법 때문에 동생이 없어요.” 남자 아이를 공개 입양한 연극배우 윤석화 씨는 부모가 50세를 넘으면 입양이 불가능한 법 때문에 더는 입양을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윤 씨의 네 살배기 아들 김수민 군에겐 동생이 없다. 윤 씨와 수민 군. 사진 제공 윤석화 씨
《한국에서도 10명을 입양해 화목하게 사는 ‘윌리엄 힉스 교수 가족’(A1면 기사 참조) 같은 ‘입양 대가족’이 가능할까? 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행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특례법) 시행규칙 제2조 2항에서 입양의 조건을 ‘자녀가 없거나 자녀의 수가 입양아동을 포함해 5명 이내일 것’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힉스 교수처럼 10명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더 ‘황당한’ 조항도 있다.

“신생아 입양을 더 하고 싶지만 부부 나이를 합쳐 100세가 넘으면 법적으로 신생아 입양이 불가능해 못했어요.”

4년 전 남자아이를 공개 입양했던 배우 윤석화(尹石花·50) 씨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윤 씨의 말대로 특례법은 ‘입양하려는 양부모의 나이는 만 25세에서 만 50세 미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0세가 넘은 부모는 건강 문제로 양육의 책임을 다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만든 규정이다.

하지만 수명이 늘어난 데다 ‘늦둥이’ 출산도 빈번한 요즘 이 규정은 현실에 맞지 않는 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또 양아버지와 양어머니의 나이 차가 15년 이상 나도 양부모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입양 관련 법에서는 입양아의 인권도 소홀히 다뤄진다.

호적법은 입양 사실을 반드시 호적에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입양 사실이 알려지길 꺼려하는 양부모들은 호적법에 입양 사실을 기록하지 않기 위해 아예 입양 대신 출생신고를 한다. 출생신고와 관련해 민법(친족편)에서는 출생신고를 부모나 친족을 포함한 신고의무자가 아이의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하도록 되어 있다. 이 기한을 넘겨 출생신고를 하면 과태료만 내면 된다. 따라서 입양한 양부모들은 과태료를 물고 입양한 아이들에 대해 새롭게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문제점은 2008년 1월 호주제 폐지로 해결된다. 새롭게 도입되는 신분등록제도에서는 입양 사실을 기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입양 사실을 명시하도록 한 법 규정 때문에 입양가정들의 고민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내 입양을 독려하기 위해 ‘입양의 날(5월 11일)’을 제정하고 입양 수속비용을 지원해 주겠다고 밝혔지만 이처럼 입양을 가로막거나 입양가정을 힘들게 하는 법적 제도적 장애물이 아직도 많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양부모가 정신적 경제적으로 입양아에게 충분한 양육과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양부모의 자격 요건에 대해 엄격히 규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홀트아동복지회 이종수 사회사업부장은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제도적으로도 국내 입양을 지원할 수 있는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법은 입양에 관해서는 ‘1온스의 사랑’밖에 없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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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입양법 변천史▼

입양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은 민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변함에 따라 입양의 조건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특별법이 많이 생겼다.

최초의 입양관련 특별법은 1955년 대통령령으로 선포된 ‘고아 양자 특별조치법’이다. 6·25전쟁으로 급증한 전쟁고아와 혼혈아동에 대한 국내 수용이 어려워지자 당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정부가 보육시설 동의 없이도 시설 아동의 해외입양을 허용했다. 이후 매년 수천 명의 고아가 미국 유럽 등지로 입양됐다.

북한 정부가 해외 입양을 남한의 ‘새로운 수출품’이라고 비난하자 정부는 1976년 국내 입양을 권장하기 위해 입양절차를 간소화한 ‘입양특례법’을 만들고 ‘입양과 양육에 관한 5개년 계획(1976∼81년)’을 세웠다. 그러나 해외입양은 계속 늘었다.

미국 뉴욕의 에번 도널슨 입양연구소는 “혈통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한국 내 입양은 친족이거나 혈통 사이에서만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1995년 개정된 ‘입양촉진 특례법’에서는 입양알선 기관의 해외입양 사후관리를 의무화했다.

현행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은 해외입양을 줄이기 위해 미혼부모 또는 혼인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해외로 입양하도록 제한했다. ‘고아’는 해외입양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

최근에는 국내 입양을 늘리기 위해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독신자 가정의 입양을 허용하자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노동당은 동성애자도 자녀를 키울 권리가 있다며 동성애자의 자녀 입양권을 인정해 주는 관련 법안을 낼 계획이다.

그러나 한 입양기관 종사자는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한 제도 마련은 좋지만 독신자나 동성애자의 자녀 입양 등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치 못한 논의 같다”며 “입양아동의 권리는 무시된 채 입양부모만의 목소리가 반영된 논의나 법,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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