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교과형 논술]모든 교과 연계 ‘종합적 사고력’ 요구

  • 입력 2006년 2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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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부터 서울대 등 주요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논술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일선 학교나 학부모 학생들은 논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특히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이 통합교과형 논술 출제방침을 밝히면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

김영정(서울대 철학과 교수) 교육방송(EBS) 논술연구소장의 기고로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해 알아본다.》

많은 학생과 수험생, 교사들을 만나 보면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여러 과목을 다 잘해야 하는 논술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논술의 기본 취지를 생각하면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들이 도입하겠다는 통합교과형 논술은 과연 어떤 것일까.

통합교과형 논술의 특징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암기로 얻은 지식보다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둘째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셋째는 한 교과의 칸막이에 갇힌 교육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교과 간에 소통하는 교육으로, 넷째는 주입식 교육에서 자기주도적 교육으로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요소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계된 통합 내용이다. ‘사고력’ ‘과정’ ‘영역전이’ ‘자기주도 중심’이란 이 네 요소는 논술고사뿐 아니라 교육 일반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논술은 ‘비판적 읽기와 창의적 문제 해결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 글쓰기’로 간략히 정의할 수 있다. 이때 ‘통합교과형 논술’이란 용어는 기존에 실시하고 있는 논술의 근본 취지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도입한 용어일 뿐이다.

통합교과형 논술고사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기존의 논술고사 대비용 논술교재들은 학생들에게 배경지식에 대한 암기를 주로 강조했다. 논술교재 제작자들이 ‘사고력, 과정, 영역전이, 자기주도 중심’이라는 논술의 근본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구체적 접근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논술 교재들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의 영역에서 논술의 주제나 소재로 채택할 만한 내용들을 뽑아 그것들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기 쉽도록 요약 정리해 주고 있다. 학생들은 논술교재에 요약 정리된 내용을 요령껏 암기해 유사한 주제의 제시문과 논제가 시험에 출제되면 암기된 내용을 대충 짜 맞춰 원고지 칸을 메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암기된 지식 중심, 결과 중심, 개별교과 중심, 주입식 학습 중심이라는 기존의 논술 교육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통합교과형 논술 개념이다.

서울대가 지향하는 통합교과형 논술은 비판적 사고력을 측정하되 문제 해결 방식이나 절차적 지식을 묻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금까지는 결과 중심적인 평가로 인해 암기만 잘 하면 어느 정도 점수를 받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단순히 암기해서 적은 답안으로는 점수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논리적-비판적-창의적 사고로 최종적으로 작성한 답안에 이르는 중간과정까지 제대로 적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통합교과형 논술 문제는 하나의 논제를 주고 이에 대해 최종적으로 작성한 답안 글 하나만을 평가하는 기존의 단수 논제 형태의 문항 구성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 중간의 사고 과정도 확인할 수 있도록 세부 논제를 포함해 여러 논제를 출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어떻게’에 관한 지식(knowing how)과 ‘어떠함’에 관한 지식(knowing that)이다. 예컨대 전자는 덧셈을 수행하는 방법을 아는 것과 같은 것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적 지식으로도 불린다. 후자는 ‘지구는 둥글다’를 아는 것과 같은 것으로 명제적 지식으로도 불린다. 이런 구별은 절차적 지식과 서술적 지식 사이의 구분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어떻게’에 관한 지식은 전형적으로 절차적 지식의 형태로 나타나며, ‘어떠함’에 관한 지식은 대부분 서술적으로 기술된다.

절차적 지식의 예는 자전거를 어떻게 타는지를 아는 것이며, 서술적 지식의 예는 자전거는 두 바퀴를 가졌고 또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균형을 잡아야만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다른 것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하여 보자. 한 초등학생 A는 산수 덧셈 문제를 외워서 100점을 받았고, 다른 초등학생 B는 덧셈의 풀이 절차를 익혀서 100점을 받았다. 이 경우 A는 명제적 지식을 이용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고, B는 절차적 지식을 이용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셈이다. 실제적 성취, 즉 학업성취도에서는 A와 B가 같지만 잠재적 능력에서는 A보다 B가 더 우수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응용문제 풀이에 있어서는 그것이 동일 영역 내의 응용문제이든, 다른 영역에 속한 응용문제이든 풀이 절차를 익혀 얻어진 잠재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적 성취 결과만 보아서는 그 학생의 진정한 능력을 알 수 없고 그 과정까지를 보아야 잠재적 능력까지를 포괄하는 진정한 능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과정 중심 교육이라는 것은 열린 가능성을 키워 주는 잠재 능력 중심의 교육인 것이다.

따라서 통합교과형 논술 교육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측정하거나 서술적 지식에 대한 학습보다는, 문제 해결 방식이나 절차적 지식에 대한 학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실제적 성취보다는 잠재적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정 서울대 철학과 교수·교육방송 논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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