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동서남북/‘김밥할머니 회관’ 살려야

  • 입력 2006년 2월 13일 0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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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자선사업가를 ‘레인메이커(rain maker)’라고 부른다. 메마른 세상에 단비를 뿌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미국의 기부문화를 분석한 이미숙 씨의 저서 ‘존경받는 부자들’은 기부와 자선이 미국을 이끌고 있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오페라의 발생지는 이탈리아이고 본고장은 밀라노와 로마이지만 중심지는 뉴욕이다. 재정에 쪼들리는 밀라노와 로마에서는 한해에 3∼4 편의 신작 오페라를 구경하기 힘들지만 뉴욕의 오페라극장은 한 시즌에 20여 편의 신작 오페라를 동시에 올린다.

오페라 레인메이커 덕분이다.

미국 전체 자선기금이 70% 이상은 연봉 3만 달러 이하의 보통사람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전의 ‘김밥 할머니’ 이복순(李福順·1991년 작고) 여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넘어 불우한 사람의 위대함을 보여줬다. 평생 김밥을 팔며 어렵게 모은 현금 1억원과 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1990년 충남대에 기증했다.

이 여사는 미국과는 달리 자선재단이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서 대학을 가장 믿을 만 하고 보람 있는 기부 대상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충남대는 그를 저버렸다. 학내 외 논란에도 불구 2000년 그의 기부금을 토대로 공연시설을 준공하면서 ‘국제문화회관’이라고 명명했다.

2002년 “이복순 여사의 숭고한 뜻이 회관 이름에 반영되지 못했다”며 그의 법명을 따 ‘정심화(正心華)국제문화회관’이라고 바꿨지만 “국제화에 걸맞지 않는다”며 최근 다시 ‘충남대국제문화회관’으로 개명하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유족과는 단 한번도 상의하지 않았다.

그의 부동산도 매각 시점을 놓쳐 가치가 10억 안팎으로 하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기부금을 모으는 데에만 열심이고 사후관리는 하지 않는 것이 한국 기부문화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자매대학 방문을 마치고 13일 첫 출근하는 양현수(梁鉉洙) 총장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 가장 구체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면 차라리 ‘김밥 할머니 국제문화회관’으로 고치면 어떨까.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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