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학습권·교육권·경영권·감사권

  • 입력 200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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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와 의무라는 잣대로 세상살이를 규율하는 것은 편리하다. 다툼을 없애지는 못해도 줄일 수는 있다. 그러나 권리와 의무 관계가 있더라도, 없는 듯 사는 게 좋은 세상도 있다. 가족관계나 교육활동이 대표적이다. 피붙이끼리 송사에 휩쓸리면 분쟁이 끝나도 화해하기는 힘들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몽땅 법으로만 다스리려 한다면, 선생은 강사가 되고 제자는 수강생이 될 뿐이다.

사학의 신입생 배정 거부 사태는 큰 고비를 넘겼다. 학생들이 제때 공부를 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 ‘납득’은 없었다. 오로지 권리의 충돌과 의무의 강요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더 힘센 권리를 가진 쪽이 모든 것을 차지해 버렸다. 교육 현장에 정글의 법칙이 적용된 것이다. 불씨가 꺼지지 않는 이유다.

학습권. 학생의 권리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학습권은 ‘신성불가침한’ 권리가 됐다. 교육기본법은 학습권을 ‘모든 국민이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존중해야 할 권리다. 그러나 이런 절대적인 권리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앞에서는 지금껏 무력했다. 전교조의 연가투쟁 때는 ‘헌법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니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교육권. 교육을 받을 권리와 함께, 교육을 할 권리도 포함된다. 교육할 권리를 학부모와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학교다. 그래서 사립학교법 제1조는 ‘이 법은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25조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사립학교를 지원·육성하여야 하며, 사립학교의 다양하고 특성 있는 설립 목적이 존중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학법 파동에서 사학의 특수성이나 자주성, 설립 목적을 존중하거나 배려한 흔적은 없다.

경영권. 학교 경영권도 학교 경영과 학교 관리의 두 측면이 있다. 교육학에서는 학교 경영은 경영자가 창의적 자율적 자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권리에 가깝다. 학교 관리는 교육 법규와 상부의 지시에 따라 학교 운영에 필요한 여러 조건과 시설을 정비 운영하는 것이다. 의무에 가깝다. 이번 사태는 사학의 고유 권한인 학교 경영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사학은 학교 문을 닫을 수 있는 권리조차 갖고 있지 않다며 학교 경영권을 완전히 무시했다.

감사권.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감사권은 감독권자의 고유 권한으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선별 감사에 맞서 모든 사학을 전부 감사하라고 주장하는 사학의 속내는 사실상 감사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밀고 들어오는 감사팀을 막을 수 없다는 건 사학이 더 잘 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교육 당국은 감사권 말고도 시정 또는 변경 명령, 임원 승인 취소, 임시이사 선임, 학교폐쇄권 등 잘 드는 칼을 여러 자루 더 갖고 있다.

사학의 신입생 배정 거부를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비리 사학을 봐주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비리 사학은 철저히 조사해서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결과 현재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39개 학교에 관선이사가 나가 있다. 시정명령권이든, 감사권이든 써야 할 때 쓰면 된다. 겁주기나 길들이기용은 아니다.

문제는 의무와 권리의 균형이다. 학습권은 학생의 고유 권한이고 감사권은 교육 당국의 고유 권한이니 절대로 침범할 수 없다고 하면서, 교육권이나 경영권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사학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여서는 사태가 풀리지 않는다. 무릎을 꿇자 머리까지 박으라는 것은 과하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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