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警대등]검사들 “수사 말라는 얘기… 허탈하다”

  • 입력 2005년 12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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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검사장들전국 고검 및 지검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회의실에서 여권이 제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안철민 기자
심각한 검사장들
전국 고검 및 지검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회의실에서 여권이 제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안철민 기자
“사실상 검찰은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검찰은 5일 열린우리당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충격적이다 못해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선 검사들은 “정상명(鄭相明) 검찰총장이 직을 걸고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펴고 있어 정 총장이 취임 2주일 만에 첫 시험대에 올랐다. 반면 경찰은 “여당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며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검찰, 충격과 허탈=열린우리당 안에 대해 검찰은 간부와 평검사를 막론하고 강한 어조로 불만을 토로했다.

검찰은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실질적으로 확보된다면 일부 민생 관련 범죄에 한해서 경찰을 수사주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마지노선’을 정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하지 않고, 여기에 경찰과 검사를 나란히 동등한 수사 주체로 명시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검의 한 검사는 “여당 안대로라면 경찰이 편파수사를 하거나 인권침해 등 문제를 발생시켜도 검찰은 속수무책”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도 “검찰권의 비대화를 막자면서 수사지휘권을 제한하면 경찰 수사는 누가 통제하느냐”며 “여당이 경찰과 검찰의 시스템을 전혀 모른다”고 질타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이날 열린 전국 고검·지검장 회의는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한 검사장은 “수뇌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따르자는, 수뇌부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 유일한 결론”이라고 했다.

대검 간부들은 열린우리당 안이 발표된 뒤 국회를 방문해 여야 의원들을 만나 검찰의 견해와 열린우리당 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고려하겠다”는 등의 답변은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무된 경찰=경찰은 열린우리당 안을 환영하면서 표정 관리에 나섰다.

경찰청 관계자는 “모든 범죄에 대해 검사의 지휘권을 배제한 홍미영(洪美英) 의원 안과 비교해 후퇴했다”며 “만족할 수도,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환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수사상 부당한 행위 등을 한 경찰에 대한 검찰의 교체 및 징계 요구권이 반영된 것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구체적인 사건수사에 대한 직무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그러나 검사 지휘를 받는 범죄를 대통령령에 규정하도록 한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마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황운하(黃雲夏)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은 “일부 범죄에 대해 검사의 지휘를 받는 것은 외국의 입법 사례도 없고, 해석을 놓고 검경 간 마찰을 빚을 수 있다”면서 “대통령령 제정 때 또 한 차례 마찰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쟁점 비교
쟁점현행청와대 안열린우리당 안검찰 요구경찰 요구
수사 주체검사검찰검찰+경찰검찰검찰+경찰
검경 관계상하 지휘협력대등·협력상하 협력대등
검사의 수사지휘모든 범죄원칙적으로 수사 지휘권 인정내란 및 외환죄 등 대통령령규정 일부 범죄원칙적으로 수사 지휘권 인정해야수사 지휘권 인정해선 안 돼
검찰의 수사지휘
배제 대상 범죄
없음대통령령 규정 민생범죄원칙적으로 수사 지휘권 불인정일부 경미한 민생범죄는 배제할 수 있어(다만 검사를 실질적인 수사 주체로 인정한다는 전제 있어야) 수사 지휘권 인정해선 안 돼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以警制檢? 여권 “힘센검찰 권한축소” 공감대▼

5일 열린우리당 검경 수사권 조정 정책기획단이 발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경찰의 입장이 크게 반영돼 있다. 검찰과 경찰을 ‘대등한 관계’로 규정한 개정안이 관철된다면 정부 수립 이후 50년 가까이 상하 관계였던 검찰과 경찰이 상호 협력과 견제를 하는 관계로 바뀌게 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의 개시와 진행, 종결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수사를 종결할 때 기소 여부는 지금처럼 검찰이 판단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또 경찰에 대한 검찰 수사지휘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는 포괄적으로 경찰의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죄’의 내용에 대해 기획단 관계자는 “내란과 외환의 죄 등 ‘국가 중대 범죄’가 해당할 것이나 구체적인 범위에 대해서는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검찰이 지휘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한 것은 시대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검찰과 경찰의 업무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수사 지휘권 범위 조정이 두 수사 주체를 장악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당내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이 여전히 영장 청구, 기소, 보완수사 요구권 등을 보유해 수사절차상 경찰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여러 정치적 고려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최근 옛 국가안전기획부와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도청)에 대한 검찰 수사와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검찰의 반발 등을 보고 어떤 식으로든 검찰의 권한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데 여권에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내년의 전당대회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경찰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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