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오늘은 어디 계세요?]<4>외국 대학선 안 통해

  • 입력 2005년 12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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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지식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보다 가장 엄격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대학사회 리더들은 초년 학자 시절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뼈저리게 체험한다. 교수직을 ‘명예에 안주할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라 끝없는 검증과 도전의 연속으로 여기는 이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편하게 살고 싶은가. 경쟁을 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대학을 택하지 말라. 그것은 진리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스스로 배겨낼 수도 없는 가시밭길이다.”》

올해 5월 미국 유수의 카네기멜론대 기계공학과 조교수 2명은 보따리를 싸고 정든 학교를 떠났다. 조교수 4년차에 실시되는 부교수 승진 심사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관문을 통과한 조교수는 3명.

한 관계자는 “카네기멜론대에서는 50%만 통과하는데 이번의 60%는 오히려 높은 편”이라며 “종신자격(tenure)이 주어지는 정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두 차례나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통과의례’ 정도로만 알려진 ‘종신교수가 되는 길(tenure track)’은 미국에서는 ‘죽음의 길’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아마존닷컴에 들어가 ‘tenure’를 검색어로 치면 결과 창에 ‘종신교수 자격을 얻기 위한 생존기술’ ‘스트레스를 이기는 법’ ‘재깍재깍 다가오는 종신교수 심사’ 등의 책이 무더기로 뜬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다는 이야기다.

앨라배마대 예술대 김희영(金嬉英·미술사) 교수. 2003년 조교수로 임명된 그는 지난 2년 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김 교수는 “강의와 논문 준비 때문에 개인시간이 항상 모자란다”며 “취미생활을 하거나 마음 편하게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해 본 기억이 어렴풋하다”고 털어놓았다.

이러다 보니 종신교수가 되기 위해 매주 60시간 이상 투자하면서 개인생활을 희생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결국 이에 따른 부부간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이혼하는 교수도 수두룩하다. ‘이혼대상 남편 1호는 대학 조교수’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교수 평가의 중요 항목은 학생들의 평가. 따라서 교수들이 강의를 빼먹는다거나 몇 년째 같은 강의노트를 쓰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뉴욕대 티시대학원 쌍방향텔레커뮤니케이션학과(ITP)는 강의계획서 틀을 고정하지 않고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정규 수업과는 별도로 보조 수업(Help session)을 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많은 학생이 ‘별도의 개인교습’을 받고 있는 셈.

이 학과 석사과정에 있는 신원섭(申元燮) 씨는 “젊은 조교수들은 매일 학생들과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해 언제든지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다”며 “e메일로 질문하면 새벽 시간에 답을 주는 교수도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미국 대학에서는 연봉을 정할 때 여름방학 기간을 빼고 9∼10개월 근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방학기간에는 학교에 대한 부채감이 없다. 그렇다고 방학 때 한가한 것은 아니다.

조교수 1년차인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김필립 교수는 “대학원생 실험조교를 쓰려면 외부 프로젝트를 따지 않을 수 없다”며 “교수들은 여름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전했다.

한국에서처럼 논문 발표 때 ‘이름 끼워 넣기’를 했다가 적발되면 미국 학계에서는 사실상 ‘사형 선고’를 받는다.

미국의 교수들도 각자 성향이나 신념에 따라 행정부에 참여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이 재무부 장관을, 로버트 라이시 브랜다이스대 교수가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합류하기 전에는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지냈다.

그러나 이들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교수의 정치 참여는 무척 조심스럽다. 정치권에 들어가면 평소 신념과 다른 발언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실제로 백악관과 행정부에는 경제학자가 필요한 주요 보직 5개가 적합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비어 있다.

종신 자격을 받은 뒤에는 어떨까. 다소 여유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긴장의 끈을 늦추기는 쉽지 않다. 대학사회 전반에 걸쳐 ‘경쟁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치열한 교수사회의 경쟁이 미국 대학이 전 세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비결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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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유럽-日교수 경쟁력은▼

미국의 대학이 무한경쟁 시스템이라면 독일과 프랑스는 어려운 교수자격 취득 과정과 ‘교수의 긍지’로 경쟁력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 교수가 되는 것은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박사학위(Doktor)만 갖고는 원칙적으로 교수가 될 수 없다.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교수자격)이라는 한 단계 높은 논문 심사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평균 40세는 돼야 하빌리타치온을 마칠 만큼 어렵고 긴 과정이다. 독일 교수의 명함에 ‘Dr.’ ‘Prof.’가 함께 명기돼 있는 것도 그런 과정 때문이다.

일단 교수가 되면 국가 공무원 신분을 보장받도록 규정돼 있다.

하빌리타치온이 워낙 어렵다보니 이를 폐지하고 조교수(Juniorprofessur)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수 인력이 미국으로 많이 빠져 나가는 이공계 쪽에서 특히 그런 주장이 많다. 박사학위 연구자에게 조교수로 최대 6년까지 근무하게 하면서 정교수 적합 여부를 심사하자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학도 모두 국립이고 교수들의 신분은 공무원이다. 그러나 교수라도 부교수(ma^itre de conf´erence)와 정교수(professeur)는 큰 차이가 있다. 정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 지도자격(HDR)을 따고 교육부의 정교수 유자격자 명단(qualification aux fonctions de professeur)에 일단 올라야 한다. 그 후가 더 어렵다. 부교수 자리를 정교수 자리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신설되는 자리는 부교수뿐이다. 따라서 정교수가 정년퇴임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올해 초 발간된 통계책자 ‘키드(Quid) 2005’에 따르면 프랑스 대학에서 정교수는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프랑스 파리 3대학, 8대학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과정을 거친 이모 씨는 “상황이 그렇다보니 휴강을 하거나 매년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교수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박사학위 취득이 ‘하늘의 별따기’다. 일부 대학원생은 “교수 되기보다 박사 따기가 더 힘들다”고 푸념할 정도다. 논문 심사만 통과하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도쿄대 게이오대 히토쓰바시대 등 명문대의 경우 박사과정에 있는 동안 외부 학술지, 그것도 권위지에 최소한 2, 3편 이상의 논문이 게재된 다음에야 학위 논문 심사 대상이 된다.

1997년 히토쓰바시대에서 재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국중호(鞠重鎬·43) 요코하마시립대 상학부 교수는 “일본에서 박사학위 받기가 한국보다 5배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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