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전혁]討全敎組檄文

  • 입력 2005년 11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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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명문장가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의 첫 문단이다. “바름을 지키고 떳떳한 것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위험에 처해 변화를 만드는 것을 권(權)이라고 한다. 지혜로운 자는 때를 따름으로써 성공하고, 우둔한 자는 이치를 거스름으로써 실패한다.” 당(唐)대의 도적 황소가 이 글을 읽고 놀라 기절했다는 얘기는 아직도 유명하다.

교육시민단체 활동을 겸하고 있는 필자는 최근 사회적 논란이 컸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반(反)APEC 계기수업, 교원평가제 등과 관련한 토론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전교조도 이제 끝이구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교조가 더는 바르지도, 떳떳하지도, 지혜롭지도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창립 초기 촌지 거부, 교내 폭력문제 해결 등 소위 ‘참교육’을 표방했을 때 전교조는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지지까지 한 몸에 받았다. 그동안 전교조는 우리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교육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으로 성장했다. 전교조의 힘은 이제 정부정책마저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해졌다.

힘이 커지면 오만도 커지는가. 지금의 전교조는 학생과 학부모는 안중에 없다. 전교조는 어느새 거대한 정치·이익단체로 바뀌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 전교조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똘똘 뭉친 10만 회원’의 위세에 눌리고, 학부모들은 내 아이에게 혹시라도 불이익이 돌아갈까 봐 냉가슴만 앓는다. 전교조는 통제가 불가능한 ‘절대 권력’이 된 것이다.

큰 물의를 빚었던 부산 전교조의 반APEC 계기수업은 오만의 극치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동영상을 교육 자료라고 올려놓고도 전교조는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동영상 자료는 전교조가 제작한 게 아니라 다른 단체가 만든 것을 자료실에 올려 놓은 것뿐이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문제의 본질이 아닌 것을 가지고 시비 걸어 전교조 죽이기에 나섰다”는 등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학부모의 우려와 분노는 아랑곳없다는 듯 전교조 지도부는 문제의 수업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고 결정했다. ‘막가파’랄 수밖에…. 어떤 말로 전교조의 이런 행태를 표현하랴.

교원평가제에 대한 태도는 또 어떤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전교조의 ‘민주’ 개념이다. 전교조는 첨예한 교육 현안마다 민주라는 가치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내세우지 않았나. 교원평가에 대한 국민 80% 이상의 지지 여론은 전교조에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교원평가제 시범학교 교장을 집단적으로 위협하고, 학교 벽과 유리에 협박 구호나 낙서를 해대는 게 전교조의 민주인가. 학생들의 수업권은 팽개치고 툭하면 연가투쟁이나 벌이겠다는 게 또 전교조의 민주인가.

전교조는 11월 12일로 예정됐던 연가투쟁을 12월 1일로 연기하면서 “언론과 정치권의 전교조 죽이기가 극에 달한 시점에서 국민은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국민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다시 확인하고 싶다면 예정대로 내일부터 연가투쟁을 벌여 보라. “너는 모름지기 진퇴를 참작하여 헤아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라…. 못난이의 생각을 고집하여 여우처럼 의심만 품지 말라.” 토황소격문의 이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전교조는 되새겨 보기를 권한다.

“전교조라면 이젠 지긋지긋하다”는 학부모들의 원성이 들끓고 있다. 학부모는 아이를 낳고 길러 학교에 보내고, 교사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교육의 근원적 주체다. 학부모는 아이들이 정치적 집단적 개인적 이해관계에 희생되는 것을 막을 권리가 있다. 학부모는 교육활동에 있어서 학생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제 학부모가 나서야 할 때다. 저 오만하고 위험한 전교조의 전횡을 저지하려면 학부모의 힘을 보여 주어야 한다.

조전혁 객원논설위원·인천대 교수·경제학 jhcho@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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