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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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68km. 수심 8m, 폭 60∼100m.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를 이루는 세계에서 가장 긴 운하.

아프리카 동북부 지중해부터 홍해와 맞닿은 수에즈 만까지 그 장대한 물길을 뚫는 수에즈 운하 공사가 1869년 11월 17일 끝났다. 1859년 4월 착공 이후 10년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이 마무리된 것이다. 수에즈 운하는 유럽과 인도양 사이의 항해 거리를 1만 km나 단축시킴으로써 세계 해양 교통의 역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수에즈 운하의 역사는 고대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로 수에즈만 지역에 운하가 건설된 것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기인 기원전 1380년경. 그러나 그 후 천재지변과 전쟁으로 인해 운하는 무너져 버렸다.

수에즈 지역은 군사상이나 무역상 매우 민감한 지역이었다. 아프리카 진출의 거점인 데다 아시아 무역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중세 들어 운하 건설을 놓고 열강 사이에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16세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상인들은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던 포르투갈 스페인을 견제하기 위해 운하를 건설하려 했다. 17세기엔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영국 네덜란드의 아시아 무역에 대항하기 위해 운하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토목 기술의 부족으로 모두 무산됐다.

18세기 말 이집트를 정복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예외가 아니었다. 불가능을 모르던 나폴레옹이었지만 기술 부족으로 끝내 운하 건설의 꿈을 접어야 했다.

19세기 들어 수에즈 운하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심해졌다. 당시 이집트는 오스만튀르크 (지금의 터키)의 식민지였다. 오스만튀르크는 운하 건설에 반대했다. 열강이 이집트 침략의 교두보로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대론 못지않게 운하를 건설해야 한다는 찬성론도 강력하게 대두했다. 열강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운하 건설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었다. 오스만튀르크도 그 같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고 1854년 결국 건설 허가를 내주었다.

운하 공사를 따낸 사람은 프랑스 사업가였다. 서구 열강이 개입하는 것을 그렇게 막고 싶던 터키인들이었지만 그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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