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美초등영어가 NYT보다 어려운 이유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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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영어로 ○○○는 무슨 뜻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꼭 하는 질문이다. 미국 생활이 3개월째인 딸로서는 아직도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학교에서 자주 들었던 말들은 발음을 한글로 대충 적어 온 다음 그 뜻을 물어보는 게 어느새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됐다.

딸은 또 친구들과 놀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던 단어들의 뜻을 물어보기도 하고 학교에서 내준 영어 숙제를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혹스러웠던 것은 미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들이 쓰는 영어 단어 중에서 내가 그 뜻을 전혀 모르는 것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이다.

내가 그 뜻을 몰랐던 단어로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독자 여러분도 본인의 영어 단어 실력을 체크할 겸 한번 풀어 보시기 바란다.

①hop scotch ②hand stand ③snapping ④snip ⑤ditto ⑥script(대본이라는 뜻은 제외하고) ⑦perky ⑧raspberry ⑨trick-or-treat ⑩argle-bargle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개인적으로 10개 단어 중에서 뜻을 아는 단어가 하나도 없었다. 정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전을 찾아보기도 하고 딸에게 추가로 뜻을 좀 알아봐 달라고 해서 알아낸 정답은 다음과 같다.

①일종의 땅따먹기 놀이 ②손으로 물구나무 서기 ③손가락으로 ‘딱’ 소리 내기 ④가위로 싹둑 자르다 ⑤복사물 ⑥필기체 ⑦의기양양한 ⑧입술 사이에서 혀를 떨어 비꼬다 ⑨핼러윈 때 어린 아이들이 다른 집을 방문해 사탕을 달라고 할 때 하는 말 ⑩입씨름

초등학생들이 많이 본다는 책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된 동화책(그림도 많았다!)을 빌려서 함께 읽어 보던 도중에 페이지마다 뜻을 모르는 단어가 계속 나와 얼굴이 화끈해진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역설적인 사실은 미국 초등학생들에게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돼 교과서 집필진이 ‘공부해야 할 어휘’로 분류해 설명을 해 놓은 단어는 오히려 익숙한 반면 중간 중간에 별도 설명 없이 나온 단어들 중에 모르는 것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른바 ‘복잡하고 추상적인’ 단어들이 자주 나오는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읽을 때는 굳이 사전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왜 초등학생들이 접하고 사용하는 단어는 이해하기가 힘든 것일까.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다. CNN 뉴스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애들과 만화영화를 볼 때는 TV 아래쪽에 자막이 뜨도록 메뉴를 선택하지 않으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왜 쉬운 영어는 어렵고, 어려운 영어는 쉬운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잘 몰랐던 단어들은 필자가 지금까지 영어공부를 하면서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단어들이었다. 적어도 필자 세대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받았던 영어교육은 그랬다. 주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은 많이 접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실생활에서 쉽게 사용하는 단어들이나 관용구에 대한 교육은 소홀했던 것 같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몇 달 전에는 본보가 매주 금요일마다 내보내는 ‘금요기획-World in Korea’의 기사를 작성하다가 ‘to save my soul’을 무심코 ‘내 영혼을 구하기 위해’라고 번역했다. 그랬다가 눈 밝은 독자들로부터 “사전 좀 찾아 본 뒤 기사를 써라”라는 e메일을 여러 통 받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 숙어의 실제 뜻은 ‘도대체’였다.

이처럼 생활하면서 전혀 몰랐던 관용구를 마주치면 ‘항복’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외국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요즘은 매일 실감하고 있다.

공종식 뉴욕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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