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경미]수준별수업 기대와 우려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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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에서 미싱할래?’ 어느 여고의 급훈이다. 직업에 대한 편견이 담기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학구열을 예리하게 자극하는 문장이다. 동음이의어를 이용하여 ‘포기란 배추 셀 때만 쓰는 말이다’라는 위트 넘치는 급훈, ‘자두(自do)’와 같이 간결하게 조어를 한 경우도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은 서울 소재 유수 대학을 역 이름으로 하기 때문에 ‘2호선 타자’라는 급훈도 있다.

‘성실’ ‘근면’ ‘하면 된다’ 등 엄숙하기만 하던 급훈이 변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의례적이고 그럴듯한 문구로 이루어진 고식적인 급훈보다는 피부에 와 닿는 구체적인 급훈을 설정한다. 이런 경향은 대중가요의 가사도 예외가 아니다. 1970, 80년대의 가요에서는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식의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모호한 가사가 많았다. 그렇지만 요즘 가요에 두루뭉술한 표현은 거의 없다. 한 번에 두 남자를 만나면서 겪는 에피소드, 배반한 애인에 대한 피맺힌 저주 등 구체적인 상황과 심경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며칠 전 수준별 교육의 확대, 강화 방안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수준별 반 편성에서 학생들이 가능하면 ‘상’ 수준 반에 소속되려는 인플레 현상이 나타나거나 또는 ‘하’ 수준 반을 선호하는 평가절하 현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대학 입학을 위한 평가방식에서 어느 수준에 포함되는 것이 유리한지에 따라 선호하는 반이 달라지겠지만, 냉정한 현실 감각을 드러내는 요즘 급훈이나 대중가요의 가사에 비춰볼 때 학생들이 자기 수준에 대응되는 반을 찾아가지 않을까 예측된다.

수준별 수업의 성공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지금껏 하위권 학생들은 중간 수준을 겨냥한 교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업의 이방인으로 겉돌았다. 그러나 이제 수준별 반 편성을 해 교사가 ‘하’ 수준에 맞는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니 드디어 수업 내용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위권을 맴돌면서 ‘용의 꼬리’였던 학생이 ‘하’ 수준 반에서는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아 ‘뱀의 머리’가 되고,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면서 수준 상승을 할 수 있는 저력을 갖게 된다. 실제적인 급훈을 내거는 요즘 세대는 알아듣지 못하면서 폼만 재며 ‘상’ 수준 반에 있기보다는, 의식의 거품을 제거하고 자기 학력에 맞는 반에 소속되는 실속을 찾을 것이다.

물론 그와 반대로 ‘양극화 현상의 심화’라는 시나리오도 있다. 여러 수준의 학생들이 한 반에서 수업을 받는 경우, 하위권은 상위권 학생을 보며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 저렇게 잘하는 학생도 있는데 나는 왜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까 하는 자책감이 학습의 주요 동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하’ 수준 학생으로만 집단 편성을 하게 되면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임이 뚜렷이 확인되기 때문에 집단 포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그에 반해 ‘상’ 수준 반에서는 수업 분위기도 좋고 서로 경쟁의식을 자극받아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수준별 수업이 사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싸고도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상’ 수준 반에 배정받기 위해 또 다른 사교육의 여지를 제공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중간 수준에 맞춰 진행되는 학교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던 학생들에게 눈높이 수업을 제공하게 되면, 학교 밖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부디 후자의 기대가 현실화되기를 희망한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 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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