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맡길 곳이 없어요”…김영주의원 호소 편지

  • 입력 2005년 10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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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증권사 직원인 송모(32·여) 씨는 매일 오전 7시 서울 동작구 사당동 집에서 나와 30분 거리에 있는 서초구 반포동의 친정에 들른다. 출근 전에 세 살 난 아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기 위해서다. 퇴근길에 다시 친정을 들러 아이를 찾아 집으로 간다.

송 씨는 “업무 특성상 야근도 잦은데 어린이집은 오후 7시 반이면 문을 닫아 집 인근 시설은 이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영유아보호법 등에는 송 씨 같은 맞벌이 주부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동부가 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영주(金榮珠·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영유아보호법에 따라 보육시설 설치가 의무화돼 있는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상시 고용 사업장 중 3분의 2가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법에 따라 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사업장 256곳 중 보육시설을 설치해 운영하는 곳은 서울대병원, 데이콤, ㈜태평양 등 57곳이었다. 순천향대 등 27곳은 시설을 운영하지 않는 대신 보육수당을 지급하고 있었다.

이들 84개 사업장을 제외한 나머지 172곳은 법에 따른 보육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

보육 지원이 지지부진한 1차적 원인은 사업주의 무관심이라는 것이 김 의원의 분석이다.

김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이들 사업장 명단을 공개해 압박하는 것도 생각했으나 그보다는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최근 172개 ‘위법 사업장’ 대표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김 의원은 편지에서 “국회의원이기에 앞서 맞벌이를 하며 힘들게 아이를 키웠던 어머니로서 직장 보육시설 설치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썼다.

사업주의 무관심 외에 현실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과 아이를 남에게 맡기기를 꺼리는 일부 여성 근로자의 인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모 국책은행의 경우 올 초 보육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신청자를 받았으나 신청자가 9명밖에 안 돼 설치를 미뤘다. 출퇴근 거리가 멀어 아기를 데리고 다니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로 신청하지 않는 이가 많았다는 것.

그러나 보육시설이 설치된 일부 사업장의 경우 직원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

2002년 말 보육시설을 설치한 서울 송파구 잠실동 L호텔에 근무하는 이아영(李阿英·34·여) 씨는 “야근이 많은데 집 근처에선 늦게까지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며 “회사 보육시설이 없었으면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육료도 월 9만 원으로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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