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통폐합 어떻게 돼가나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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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와 밀양대는 구성원들에 대한 끈질긴 설득과 상생전략으로 통폐합을 성사시켜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대 캠퍼스 본관에 통폐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부산대와 밀양대는 구성원들에 대한 끈질긴 설득과 상생전략으로 통폐합을 성사시켜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대 캠퍼스 본관에 통폐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달 28일 8개 국립대를 내년부터 4개로 통합한다고 발표하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대학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폐합으로 대학들이 시너지효과를 내게 될지, 무리한 통합으로 내부 갈등에 휩싸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통폐합이 성사된 국립대에 대한 현지 르포를 통해 대학 구조조정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한다.》

▼부산대-밀양대 양보해서 ‘윈윈’▼

“통합 승인이 나와 기쁘지만 우리 학교가 없어진다니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밀양대가 역사 속으로 그냥 사라지지 않으려면 부산대로 거듭나고 세계적 대학이 되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29일 낮 12시 경남 밀양시 밀양대 구내식당에서 열린 부산대와의 통합 자축 행사에서 밀양대 이상학(李相學) 총장은 목이 메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직원들도 착잡한 표정이었다.

김동화(金東華) 교수회장은 “큰 대학의 교수가 되는 것은 좋지만 그에 걸맞은 성과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교수 교직원 모두 희비가 교차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부산대와 밀양대는 치밀한 준비와 특성화 전략으로 통폐합을 이뤄낸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업대인 밀양대는 본고사를 치러야 할 정도로 지원자가 넘쳤지만 2002년부터 신입생 미달 현상이 시작됐다. 올해 신입생 충원율은 74%까지 내려갔고 학생 수준도 떨어져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지난해 7월 밀양대가 통합을 먼저 제의한 데 이어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방안을 발표하면서 공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통합 논의가 본격화됐다.

반면에 농대가 없어 연구에 한계를 느끼던 부산대는 밀양대 농대를 흡수하고 시 외곽에 최신 시설을 갖춘 밀양대 캠퍼스를 활용할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한때 밀양시민의 반대가 있긴 했지만 양 대학 총장들이 교수, 학생, 시민을 상대로 수십 차례 설명회를 여는 공을 들인 끝에 90%의 찬성을 얻어 올해 3월 31일 통합에 합의했다

통합에 따라 양 대학은 2006학년도부터 부산대 215명, 밀양대 720명 등 935명의 신입생을 감축하고 유사·중복학과를 통폐합한다. 밀양대의 3개 단과대와 산업대학원을 없애는 대신 부산대의 최첨단 분야인 나노과학기술대를 밀양캠퍼스로 옮길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부산캠퍼스는 인문사회 자연계열, 밀양캠퍼스는 나노과학 및 생명자원, 양산캠퍼스는 의치의학 분야가 집중 배치된다. 독일 프라운호프 연구소도 유치했다.

총장직을 포함해 밀양대의 3처 1국 5과를 없애고 2개 단과대의 최소 조직만 유지한다는 방침. 교수와 교직원의 신분은 일단 보장되지만 장기적으론 장담할 수 없다.

부산대 김유근(金有根) 기획협력처장은 “통폐합으로 3년간 50억 원의 예산 절감과 교육 특성화가 기대되지만 실제 통합 효과는 8000억 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밀양대 정주현(鄭珠鉉) 총학생회장은 “내년 신입생부터 부산대 학생이 되지만 현재 재학생은 혜택이 없다”며 “재학생도 부산대 졸업장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폐합 성사는 두 대학 총장의 리더십과 상대 학교에 대한 배려가 결정적이었다고 교수 교직원들은 입을 모았다.

부산대 김인세(金仁世) 총장은 취임 2년 만에 800억 원의 발전기금을 모은 추진력을 바탕으로 교수, 교직원, 학생, 시민을 끈질기게 설득해 동의를 얻어냈다.

밀양대 이 총장도 지난해 3월 총장 선거에서 “통합이 성사되면 즉시 사퇴하고 실패해도 사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류호경(柳浩景) 기획처장은 “총장이 자기희생을 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부산·밀양=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전남대-여수대 氣싸움에 ‘헉헉’▼

전남대와 여수대가 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풀어야 할 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전남대 교정에 통합과 국립대 법인화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총학생회 명의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광주=홍성철 기자

“통합 축하요? 이제부터 첩첩산중입니다.”

8개 국립대의 통폐합 결정이 보도된 지난달 29일, 전남대와 통합 예정인 여수대 이삼노(李三魯) 총장은 “본격적인 작업은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2년 이상 남은 임기도 포기한 채 거의 매일 교수와 학생, 동문에게 전남대로의 통합을 설득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지난달 21일에는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 200여 명과 3시간 넘게 토론을 벌이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학생 3만여 명에 교수 900여 명이 근무하는 전남대와 학생 약 7000명에 교수 약 180명인 여수대의 통합은 최초의 국립종합대 간 통폐합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통합 작업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협상 상대인 전남대는 물론 여수대 내부의 의견차를 조율하는 것은 장애물 경주나 다름없는 고달픈 여정이었다.

올해 1월 시작된 전남대-여수대의 통합 노력은 6월 14일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더 큰 난관에 부닥쳤다.

통합의 필요성에 공감하던 구성원들이 중복 학과 처리, 교수 처우 문제 등 ‘각론’에 들어가자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 전남대로의 흡수 형식으로 통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안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수대 고용진(경영학과 4학년) 총학생회장은 “협상과 내부 설명회 과정에서 불신과 반목이 심했다”며 “설명회에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가 참석해 의문을 풀어주고 요구 사항을 정리해 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가장 중요한 사안인 중복 학과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 일단 행정학과는 내년부터 전남대에서만 신입생을 모집하고 나머지 학과는 이름을 바꿔 특성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통합은 전남대로서도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전남대 서종석(徐宗錫) 기획협력처장은 “통합대학 명칭을 전남대로 하기로 한 것 말고 결정된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여수대 재학생의 신분 문제만 해도 여수대 측은 전남대 졸업장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전남대 측은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외국어, 컴퓨터 인증 등 전남대 학생과 같은 기준을 충족해야 전남대 졸업생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수대는 또 대학 예산을 캠퍼스별로 별도 편성하고 여수캠퍼스에 부총장 직을 상설화하는 등 어느 정도 독립성이 보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전남대는 같은 대학이 된 이상 예산 별도 편성은 불가능하며 부총장 제도를 두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할 사항이라는 견해다.

서 처장은 “전남대로서는 이 지역의 고등교육 발전이라는 통합의 진정한 의미를 달성하기 위해 주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여수대를 명실상부한 전남대로 바꾸려면 교육과 연구의 질 역시 전남대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여수대는 통합계획서에서 요구한 한의과대 신설에 대한 약속이 없어 지역 주민과 동창회 설득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광주·여수=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


▼충주대-청주과학대… 강원대-삼척대도 통합 순조▼

충주대는 4일 청주과학대와의 통합대학 명의로 신문에 2학기 수시모집 공고를 내 두 대학의 통합을 실감케 했다.

충주대와 청주과학대는 통합에 대한 합의가 모두 끝났기 때문에 학과 이전과 공간 재배치 등 ‘하드웨어’적 문제만 남은 상황이다.

전문대인 청주과학대의 재학생들은 졸업 시 전문학사 학위를 받게 되며 2006학년도 신입생부터는 통합 충주대 학생이 된다. 내년부터 산업디자인과 등 11개 학과가 청주과학대에서 충주대로, 식품생명공학과 등 2개 학과가 충주대에서 청주과학대로 이전한다.

강원대의 경우 최현섭(崔鉉燮) 총장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무릎을 꿇은 사진이 보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원대 신승호(辛承昊) 기획협력부처장은 “그동안 설득과 협상을 충분히 했기 때문에 두 대학 사이에 별다른 쟁점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강원대와 삼척대는 2학기 수시모집은 캠퍼스별로 진행하되 정시모집부터는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삼척대는 산업대여서 일반 종합대인 강원대와 재학생의 신분을 통일하는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다.

신 부처장은 “통합 시점부터 같은 대학으로 하기로 했고 산업대 역시 4년제로 교육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학생 신분 통합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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