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오늘 55주년…본보기자 KF-16機를 타다

  • 입력 2005년 6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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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기자
윤상호 기자
이륙 30초 전.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쳤고, 가빠진 호흡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긴장으로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가운데 마침내 “테이크 오프(take off)”라는 이륙 허가가 떨어졌다.

21일 오전 중부전선 공군 제19전투비행단 활주로. 기자와 공승배(공사 39기) 소령이 탑승한 최신예 KF-16 전투기의 2만9000파운드짜리 터보엔진이 최고 출력으로 포효했다. ‘욱’하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온몸이 뒤로 쏠려 조종석에 찰싹 달라붙는 것 같았다.

동아일보기자 KF-16 전투기를 타다

창밖으로 활주로가 휙휙 지나간 뒤 기체가 솟구치자 하늘이 빙빙 돌면서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이륙 1분. 7000피트(약 2100m) 상공까지 상승한 기체는 균형을 잡았다. 기체 밖으로 국토의 모습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1일 최신예 KF-16 전투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본 국토의 아름다운 모습. 선열들이 피와 땀, 눈물로 지켜낸 산천이 6·25전쟁 55주년을 맞아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윤상호 기자

“하늘이여.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목숨으로 지킨 순결한 조국의 하늘이여. 그리고 간난의 역사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은 산하의 눈부신 아름다움이여….”

올해로 민족상잔의 6·25전쟁이 발발한 지 55년. 그때 이 땅과 강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피땀을 흘렸는가를 생각하니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조국의 창천(蒼天)을 독수리처럼 날며 국토를 수호하는 자랑스러운 공군의 모습을 그들은 보고 있을까.

조종석의 녹색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등 10여 개의 계기판에는 무수한 숫자와 신호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헬멧 속의 헤드폰에선 공 소령과 지상관제소가 교신하는 소리와 기계음이 귀가 따가울 만큼 쉴 새 없이 이어졌다.

10여 분 뒤 설악산 상공에 도착했다. 저 너머 북쪽으론 한반도의 허리를 가른 비무장지대가 놓여 있다. 조국의 영공이 50년 이상 끊겨 있는 분단의 현장에서 기수를 돌려 백두대간을 따라 남하하는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울창한 산림은 초여름 햇빛에 반사돼 더욱 푸르게 느껴졌다. 기체 왼편으론 동해의 해안선이 아련히 눈에 들어왔다.

주왕산과 팔공산 일대를 거쳐 낙동강 다부동 전적지로 내려오는 코스는 6·25전쟁의 격전지였다. 특히 다부동 지역은 낙동강 방어선을 놓고 남북이 55일간 치열하게 대치해 국군 1만여 명과 인민군 3개 사단 2만4000여 명이 죽거나 다친 곳.

전적지 옆으론 당시의 상흔을 씻어내듯 황토색 낙동강 줄기가 말없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포화로 짓이겨졌던 산하에서 참혹했던 전투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1953년 정전 후 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천은 강인한 자생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 그 뒤에 태어난 자들의 가슴엔 민족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다. 그 상처는 6·25 무렵이 되면 더욱 아프게 우리를 헤집는다.

비행을 시작한 지 50여 분이 지나자 극심한 멀미와 두통이 몰려왔다. 다부동 부근에서 기체가 4000피트(약 1200m)까지 급하강했을 땐 멀미가 더 심해져 조종복 주머니에 넣어둔 비상봉투로 자꾸만 손이 갔다.

다음은 인근 지역의 공대지(空對地) 사격장에서 저고도 편대공격 훈련을 할 차례. 산과 산 사이를 저고도로 비행해 목표물에 몰래 접근한 뒤 모의사격을 하고 급상승해야 하지만 도저히 몸무게 4배 이상의 중력가속도를 견딜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KF-16 조종사들은 중력의 9배가 넘는 가속도를 견뎌야 한다. 일반인들로선 상상하긴 힘든 고통의 순간이다.

지리산을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독립기념관 상공에 다다랐을 때 가쁜 숨을 몰아쉬는 기자의 상태가 걱정됐던지 공 소령이 “조금만 참으세요. 곧 착륙합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8000피트 상공에서 기체는 차츰 고도를 낮췄다. 드디어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는 순간 “이젠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땀투성이의 헬멧을 벗은 기자를 부축한 공 소령은 “첫 비행치곤 잘 견뎠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국을 수호하느라 이런 힘든 비행을 이겨내는 공군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제19전투비행단은 유사시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적진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6·25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이날 KF-16기를 타고 한반도의 동서남북을 비행한 거리는 약 1200km. 상공에서 1시간 40분간 둘러본 국토는 호국의 중요함을 되새기게 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비행전 ‘지옥 테스트’

뒷자리에 탄 기자
21일 공군 최신예 KF-16 전투기를 타고 6·25전쟁의 주요 전적지 등을 둘러보기 위해 비행에 나선 윤상호 기자(조종석 뒷자리). 다른 KF-16 전투기를 몰고 옆에서 편대비행을 한 오충원 대위가 촬영했다. 사진 제공 공군

“5초 만에 의식불명 상태(LOC)에 빠졌습니다.”

16일 충북 청주시 공군사관학교 내 항공생리 훈련장. 가속도 훈련(G테스트)을 위해 모형 전투기 조종석에 앉자마자 녹초가 된 기자를 공군 관계자들이 부축해 끌어냈다.

G테스트는 전투기 탑승을 위해 거쳐야 하는 첫 관문. ‘인간 원심분리기’로 불리는 모형 조종석이 빠른 속도로 돌 때 생기는, 자기 몸무게 6배의 중력(6G)에서 30초를 버텨야 한다. 최신예 전투기인 KF-16 조종사는 9G에서 10초 이상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6G에 도달한 직후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졌고 순식간에 피가 하체로 몰리면서 뇌에 혈액공급이 급감해 의식을 잃어버린 것. 정신을 차렸지만 극심한 구토감과 두통이 엄습해 10여 분간 회복실 신세를 져야 했다. 다행히 재도전에서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간신히 통과했다.

밀폐된 저압탱크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2만5000피트(7.6km) 상공까지 치솟아 오른 상황을 설정한 뒤 산소마스크를 벗고 저산소증을 체험하는 저압훈련도 받았다. 나눠준 종이에 구구단을 외워 쓴 지 4분여 만에 의식이 가물거리자 조교가 즉시 산소마스크를 착용시켰다. 함께 훈련을 받은 여성 초급장교는 이 상태에서 8분을 버텼다.

이런 항공생리 훈련을 거쳐 초중등 비행훈련 과정과 최종 전투태세훈련(CRT)을 끝낸 뒤에야 비로소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를 수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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