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택]스승의 날을 2월로 바꾸자

  • 입력 2005년 5월 9일 18시 24분


코멘트
해마다 맞는 스승의 날이지만 올해는 교사들에게 더욱 부담스러운 스승의 날이 될 것 같다. 학교 폭력 문제로 스쿨폴리스제를 도입하는가 하면 교원 평가 문제로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원단체들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불법 찬조금 문제에다 고교 1학년생들의 촛불집회 등 학교는 지금 초긴장 상태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은 교사에게 무엇인가.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좋기만 할까.

스승의 날이 오기도 전에 학부모 단체에서는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부패방지위원회는 ‘일선 교사 촌지 수수 행태’ 사례를 밝혀 교원단체가 “교사들의 사기를 짓밟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참다못한 학부모단체가 아예 스승의 날을 학기말인 2월로 옮기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2월로 옮길 경우 “앞으로 내 자식을 잘 봐 달라”고 청탁하는 날이 아니라 ‘지난 1년간의 노고에 감사하는 날’로 바뀌리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촌지문제로 전체교사 매도▼

스승의 날이 되면 사실 교사들도 자존심이 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스승의 날에 모든 교사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해야 하는지 짜증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스승의 날은 1958년 5월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단(RCY) 단원들이 병환 중이거나 퇴임한 선생님을 찾아뵙고 위문하는 활동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뒤 이러한 의미를 살려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생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따로 정해 행사를 열어 왔고 1982년부터는 이날을 스승의 날로 법제화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스승의 날을 법제화한 이유는 ‘사제 간의 윤리를 바로잡고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을 교육하는 숭고한 사명을 담당한 선생님들의 노고를 알고 존경하는 기풍을 길러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날로 더해 가는 교육 위기 앞에서 교사들은 점점 왜소해지고 위축되고 있다. 제자의 성적 조작 사건 등 교육계 비리 때문에 교육에 전념하는 성실한 교사조차 사기가 떨어지는 마당이다. 물론 자질 미달 교사나 부적격 교사는 교단에서 축출돼야 한다. 그러나 교원의 자질 문제를 교사 개인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교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얘기만 해도 그렇다.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뒤 교직사회에서는 ‘주요 과목’(수능 과목을 이렇게 부른다)과 ‘기타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들 간에 생긴 위화감이 심각하다. 늘어난 수업 시간에 보충수업, 자율학습 감독까지 인문계 교사들은 수험생과 똑같은 처지가 됐다. 새벽같이 등교해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니 가족과 보낼 시간조차 찾기 어렵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고민과 진로 상담, 끝도 없이 쏟아지는 공문 처리, 수업과 교재 연구로 눈코 뜰 새 없이 쫓기며 살아가는 것이 일선 교사들이다. 인성 교육이란 교육부 관료들이나 쉽게 하는 말이지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무너지는 교실, 교육이 없는 교실에 어떻게 스승이 있을 수 있을까.

대다수의 일선교사들은 형식적인 행사 위주의 스승의 날도 바라지 않는다.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달고 행사를 치른다고 해서 학생들의 존경심이 우러날 리 없다.

▼무너지는 교실 웃음 되찾아야▼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스승의 날 행사보다 ‘다음 세대의 주인공을 교육하는 숭고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시험 점수 한 점 더 얻기 위해 친구가 적이 되어야 하는 그런 교실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교실, 끝없는 잠과 전쟁을 치르는 교실이 아니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꿈과 웃음이 되살아나는 교실을 갈망한다.

교사들이 바라는 그런 교육은 언제쯤 가능할지, 그날이 올 때까지 교사들은 올해 스승의 날에도 우울한 느낌을 면치 못할 것 같다.

김용택 마산합포고 교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