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아직 꺼지지 않은 ‘高1 촛불’

  • 입력 2005년 5월 8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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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1학년생들이 7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개최한 촛불집회가 예상과 달리 참석 인원도 적고 조용히 끝나자 교육 당국은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날 집회는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이 입시 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들을 위한 촛불 추모제로 열었지만 내신등급제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합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교육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집회 참가 학생은 400여 명인 데 비해 이들을 만류하기 위해 나온 교사와 교육청 관계자는 600여 명이나 돼 과잉 대응이란 말까지 나왔다.

사상 초유의 ‘고1 반란’ 때문에 현장에 나온 고교생이나 교사,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 정작 학생들은 내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K고 1학년 이모(16) 양은 “친구들이 내신 불만을 표시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자극적인 글이 많아 호기심에 나왔다”며 “상대평가라는 것 빼고는 솔직히 잘 모른다”고 말했다.

서울 D외고 1학년 김모(16) 양도 “우리끼리 집회하는 줄 알고 나왔는데 어른들 데모 판처럼 노래를 틀고 구호를 외쳐 학생 집회를 망치는 것 같다”며 발길을 돌렸다.

이날 집회에는 ‘내신도 본고사도 싫다’ ‘학벌타파 없으면 비극은 계속된다’는 등 대안 없는 피켓과 구호도 많았고, 대기업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비판하는 단체의 유인물까지 나돌았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교육인적자원부의 책임이 크지만 어른들이 학생들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할 측면도 있다.

교육부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부터 내신 반영 비중이 높아진다”고 강조해 오다 내신등급제 불만이 터지자 “실제 반영률은 0.625%에 불과하다”고 ‘물 타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언론도 교육 정책의 내용이나 문제점을 충분히 짚어 주지 못하고 집회 규모에만 초점을 맞춰 선정적 보도를 하지는 않았는지 자성할 대목이 있다.

다행히 첫 집회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지나갔지만 학생들은 두발단속 문제를 들고 14일 또다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신세대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갈망하는지 헤아려 더는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일이 없게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인철 교육생활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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