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택권]“그 학교 안보내!” 교육 반란

  • 입력 2005년 1월 3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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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K 씨(45·서울 성북구)는 요즘 중학교 3학년 아들의 고교 배정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같은 동네의 학생들이 대부분 배정되는 고교의 면학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 교사들까지 “가능하면 그 고교에는 가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할 정도여서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K 씨는 “할 수 없이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4km 이내 고교를 대상으로 미리 지원한 뒤 추첨으로 배정하는 공동학군에 지원했지만 원하는 학교에 배정될지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교평준화제도에서 학교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좀 더 나은 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집을 옮기거나 특정학교에 배정해달라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김미옥기자

○ 1년 내내 초-중학교 배정 민원 잇따라

지난해 서울 강서교육청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배정에 대한 민원이 1년 내내 계속돼 담당 공무원들이 곤욕을 치렀다.

학부모들이 좋다고 소문이 난 ○○중학교에 자녀를 배정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심지어 이 중학교에 학생이 많이 배정되는 초등학교에 보내달라고 미취학 아동 학부모까지 민원을 내고 있다.

이 같은 학교 배정관련 민원은 배정을 코앞에 둔 1, 2월 더욱 심해진다. 지난해 초 경기 지역에서는 배정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입학 등록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서울에서도 학부모들이 시교육청에 몰려와 항의 시위를 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아파트에는 ‘△△고교 배정을 거부합시다’라는 내용의 벽보가 붙기도 했다.

○ 학교 실력차 있어도 학교 선택할 수 없어

지역간 격차는 물론이고 같은 지역 내에서도 학교마다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학부모와 학생은 학교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한나라당 이주호(李周浩) 의원이 지난해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2001년 교육성취도 평가 결과를 분석해 고교간, 지역간 격차가 심하다는 자료를 낸 뒤 학부모들의 불안이 더 커졌다.

서울의 경우 강남구의 A고는 평균 성적이 70.75점인데 비해 중구의 B고는 44.20점으로 배 가까이 차이가 났고, 이런 격차 현상은 초중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도 어떤 고교에 배정되느냐에 따라 대학 진학률이 크게 차이가 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중학교 때는 실력이 비슷했던 학생들도 고교 3년간 어떤 분위기에서 공부하느냐에 따라 학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

학부모 H 씨(44·서울 서초구)는 “지난해 대학 진학실적이 저조한 고교에 배정받은 딸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했다”며 “요즘도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학원에만 의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작년 서울 고교신입생 2077명 “학교 옮길래”

배정을 앞두고 우수 학교가 많은 지역으로 이사를 하거나 배정받은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전학하는 학생도 많다.

2년 전만 해도 신학기 초면 서울시교육청 앞에는 고교 신입생 학부모 수백 명이 자녀가 배정받은 학교를 바꾸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장사진을 치곤 했다. 시교육청이 지난해부터 인터넷을 통해 전학신청을 받으면서 이런 폐단은 줄었지만 전학신청이 쇄도해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학교 배정을 받은 뒤 3월에 전학을 신청한 고교 신입생은 △2002년 2140명 △2003년 2048명 △2004년 2077명이다. 반면 같은 달에 전학 신청한 2, 3학년 재학생은 2003년 156명, 2004년 140명에 불과했다.

○ ‘솔로몬 지혜’는?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선택권 확대를 위해 평준화 지역에서 선(先)지원 후(後)추첨제를 확대하고 자립형 사립고 도입 등 평준화의 부작용을 줄이고 고교 교육을 특성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지원 후추첨제’는 학생이 가고 싶은 학교를 적어 신청하면 이들을 대상으로 학교를 추첨 배정하고,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학생들을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배정하는 방식.

현재 대부분의 평준화 지역에서 실시 중이며 지역에 따라 선지원 비율 확대 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특정 학교에 지원이 몰릴 경우 가까운 학교를 두고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부작용이 예상돼 서울 등 일부 시도는 확대를 꺼리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의 경우 교육부는 전국 6개 학교의 시범운영 결과를 분석해 6, 7월경 확대 여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또 자율학교와 특성화고교 등은 직업교육을 위한 실업계 중심이어서 좋은 대학에 자녀를 진학시키고 싶은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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