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조서 증거능력 불인정]자백에 의존한 검찰수사 제동

  • 입력 2004년 12월 16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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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내용을 문제가 된 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사례=교통사고를 당한 피고인 주모 씨 등은 1999년 6월 의사 최모 씨와 공모해 노동력을 상실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 1700만 원을 탄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주 씨와 최 씨에게서 ‘범죄 자백’을 받아 조서를 작성했고, 주 씨 등은 그 조서에 서명 날인했다.

주 씨와 최 씨 등은 법정에서 범죄 혐의를 부인했지만 1, 2심 재판부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했던 주 씨 등의 신문조서 등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주 씨 등은 “우리가 검찰에서 했던 진술 내용과 다르게 조서가 작성됐으므로 조서의 증거능력이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상고했다.


▽판결 내용=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따르면 주 씨 등의 주장은 기각 대상이다. 주 씨 등이 조서에 서명 날인했으므로(조서의 형식적 진정성립이 인정되므로) 주 씨의 조서 내용은 실제 진술 내용과 같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실질적 진정성립의 추정)이다. 1, 2심 재판부는 기존 판례대로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판결에서 기존 판례를 바꿨다. 조서의 형식적 진정성립으로 실질적 진정성립을 추정할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피고인이 법정에서 조서의 진정성립을 부인하면 그 조서는 증거능력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판례 변경의 근거=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본문은 ‘검사가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공판 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원(原)진술자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때에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 대법원 판례가 이 조항에 대한 해석을 잘못해왔다고 밝혔다. 문제의 조항에 따르면 검찰에서의 피의자 진술조서는 ‘그 피의자(피고인)의 법정 진술에 의해서만’ 실질적 진정성립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판례는 피의자의 서명 날인만 가지고 조서의 실질적 진정성을 추정하도록 함으로써 법 해석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의미와 파장, 논란=주 씨 등의 변론을 맡아 이 판결을 이끌어낸 김종훈(金宗勳) 변호사는 “기존 판례는 왜곡된 법 해석으로 부당한 수사관행에 면죄부를 주어 왔는데 이것이 바로잡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판결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단서에 따라 조서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입증되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조서내용을 부인해도 증거능력이 인정되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례 변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사가 적합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피고인이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조서내용을 부인해도 그 조서가 증거능력을 인정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검찰이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너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재야 법조계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로 대법원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피고인 검찰조서 부인땐 증거능력 인정할 수 없다”▼

검찰이 작성한 조서라고 해도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가 진술한 대로 작성되지 않았다”며 그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다는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의 기존 판례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 조서의 서명 날인이 내 것이 맞다”고 인정하면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가혹행위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증거능력을 인정해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담·金龍潭 대법관)는 16일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한 보험사기 혐의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사가 피의자 등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원(原)진술자의 진술에 의해 실질적 진정(眞正)성이 인정될 때에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 조서에 대해 형식적 진정 성립(서명날인 사실)을 인정한 것만 가지고 그 조서의 실질적 진정성까지 추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같이 해석하는 것이 형사소송법상 직접심리주의 및 구두변론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공판중심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 조서의 내용을 부인하는 경우 그 조서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지 않아 수사 실무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이번 판례 변경으로 자백 중심의 수사 관행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법정에 제시된 진술과 증거만을 가지고 재판하는 공판중심주의가 훨씬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증거능력:

증거로 삼을 수 있는 자격. 형사재판에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 가운데 증거능력이 있는 것만을 대상으로 그 증거가 증명력(신빙성)이 있는지 판단한다.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는 아예 검토 대상에서 배제된다.

:증명력: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 가운데 그 증거의 내용이 유죄의 증거로 믿을 수 있다는 뜻. 즉 신빙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증거능력이 있더라도 그 내용이 신빙성이 없는 경우에는 증명력이 배제된다.

:조서의 진정(眞正)성립:

형식적 진정 성립과 실질적 진정 성립으로 나뉜다. 진술자가 조서에 날인과 서명을 제대로 했을 경우 형식의 진정성이 확보됐다고 하며 조서의 내용이 진술자가 실제 진술한 내용과 똑같이 작성됐다고 인정되면 실질적 진정성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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