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지원 ‘인색한 Korea’… “한국 온것 후회”

  • 입력 2004년 12월 9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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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거주하는 난민과 난민 신청인들이 정부의 난민정책 부재로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힘들게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최근 난민 및 난민 신청인 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본보는 9일 민변의 ‘국내 외국인 난민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 보고서는 국가인권위원회 민간경상보조사업의 하나로 민변이 시민단체 ‘좋은 벗들’ ‘피난처’와 함께 낸 것. 한국 사회가 1994년 첫 난민 신청을 받은 이후 정부 및 민간 차원을 통틀어 난민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난민 및 신청자 한 달 평균 수입
수입
없음16
10만원 이상∼20만원 미만0
20만원 이상∼40만원 미만2
40만원 이상∼60만원 미만5
60만원 이상∼80만원 미만5
80만원 이상∼100만원 미만9
100만원 이상∼120만원 미만21
120만원 이상∼150만원 미만11
150만원 이상1
합계70
자료제공: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난민들의 고단한 삶=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 인정 신청인은 11월 말 현재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31명을 포함해 모두 377명.

이번 조사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8명과 난민 인정 신청인 62명을 대상으로 10, 11월 심층 설문조사한 것으로 안전을 이유로 신분 노출을 꺼리는 이들은 제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70명의 대상자 가운데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모두 51명. 그러나 직업이 있는 이들도 37%가 단순노무직이나 건설노동자 같은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정규직을 가진 이들도 대부분 공장에서 단순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직장이 없는 4명을 제외한 66명 가운데 최소 3회 이상 직장을 바꾼 사람들이 43명으로 65%가 넘었다. 특히 응답자 중 9명은 11회 이상 직종을 전환했다고 대답해 안정적인 직장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난민들의 곤궁한 삶은 한 달 평균수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월 150만 원이 넘는 수입을 가진 이는 조사 대상자 가운데 단 1명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53%가 100만 원도 채 못 버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입원이 없다’고 대답한 이도 16명(23%)이나 됐다.

난민들은 정부에 직업훈련(4명)과 주거 보장(4명)을 가장 절실히 요구하고 있으며 난민 신청인들은 법률 지원(26명)과 의료 혜택(24명)을 가장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난민 예산 1년에 1000만 원=사실 그간 정부는 “난민 인정 신청인들은 대부분 정규직에 취업해 있으며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영위하고 있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는 이 같은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 민변의 난민담당 김기연 간사(30·여)는 “구체적인 정황 증거가 드러난 만큼 정부 역시 그간의 난민정책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 난민을 받는 대부분 국가가 난민 전담 독립기구를 두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불법체류 문제를 담당하는 법무부 체류심사과 직원 1명만이 난민 정책 모두를 총괄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정부 내에서도 난민 문제는 어느 부서도 떠맡지 않으려는 분위기”라며 “정부의 난민 예산이 1년에 1000만 원이니 제대로 된 정책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1981년 프랑스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경험이 있는 언론인 홍세화(洪世和) 씨는 “프랑스의 경우 난민 인정 신청인에게도 매달 기본생활 지원금 및 체류허가증과 노동허가증을 줬다”며 “투표권을 제외한 모든 권리를 프랑스 국민과 동등하게 누렸다”고 회고했다.

민변의 박찬운(朴燦運) 난민법률지원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난민인정절차가 까다롭고 인정 이후에도 전혀 지원이 없는 나라”라며 “뉴질랜드같이 인구가 적은 나라도 난민 전문 담당 공무원만 70명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아내는 의보혜택 못받아 다른나라 보내”▼

“만약에 다시 난민이 된다면 한국을 선택하진 않을 겁니다.”

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만난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 A 씨(30). 오랜 한국생활로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한국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난민 지위를 획득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출입국관리소를 포함한 정부로부터 그 어떤 혜택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 법에 따라 ‘한국 시민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받았지만 그가 받은 것은 단지 ‘건강보험증’ 하나뿐이었다.

“이번 추석에 정부에서 웬일로 쌀 20kg 한 포대와 라면 2박스를 선물로 보내 왔어요. 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정부로부터 받은 경제적 지원은 이게 전부입니다.”

A 씨는 난민 인정 이후 한국으로 들어와 함께 살던 부인(30)이 다른 나라로 가 혼자 살고 있는 상태.

혈압이 높은 부인은 한국에 들어온 뒤 잦은 병치레를 했지만 A 씨가 일정한 직업이 없어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건강보험도 A 씨에게만 적용돼 결국 부인은 난민신청 대상자도 무료 치료가 가능한 다른 나라로 갔다.

그러나 A 씨가 ‘무상원조 수준의 경제적 지원’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A 씨를 포함한 모든 난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정부의 관심과 교육의 기회.

“1년에 한 번이라도 정부가 받아들인 난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에서 난민과 난민 신청 대상자에게 한국말이라도 가르쳐줬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한국에서 이들의 자녀라도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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