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생 뒤에 우수어머니 있다”… 이정용씨, 한형순씨

  • 입력 2004년 12월 8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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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아이 뒤에는 특별한 부모가 있었다. 그 ‘특별함’이란 다양한 독서와 경험을 통해 아이가 충분히 생각하고 느낀 뒤 이를 표현하는 기회를 마련해 준 것. 또 아이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키워 주는 한편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로즈장학생’ 32명 중 1명으로 선발된 이용화 씨(22·여·미국 매사추세츠공대 4년)의 어머니 이정용 씨(49·미국 시애틀 거주)와 두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한형순 씨(49·충북 제천시)를 통해 아이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한 자녀교육법에 대해 들어봤다.》

▼딸 옥스퍼드大 로즈장학생 만든 이정용씨▼


“초등학교 때 읽기, 쓰기 능력을 탄탄하게 갖추면 모든 학과 공부의 80% 이상을 한 셈입니다.”

이정용 씨의 자녀 교육은 ‘읽기, 쓰기 실력 키우기’가 핵심.

2녀 중 장녀인 이용화 씨는 경남과학고 1학년 때인 1998년 미국 시애틀로 이사한 후 3년 만에 매사추세츠공대(MIT) 전액 장학생으로 뽑혔다. 최근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을 배출한 로즈장학생으로 선발돼 눈길을 끌었다. 동생 세화 씨(21)는 워싱턴대에 다닌다.

이 씨는 한때 국어 교사를 하기도 했고 남편 이한칠 씨(52)는 미국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 읽기 쓰기가 먼저

용화 씨는 5세 때 한글을 깨친 이후 많은 동화책을 읽고 6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휘와 문장을 충분히 익히고 난 뒤 쓰기 교육은 가급적 천천히 시키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서였다.

“일기를 쓴 후에는 의성어, 의태어를 비롯해 형용사나 부사를 많이 말해줬어요.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고 썼다면 ‘새콤달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같은 식으로요.”

모교인 MIT 대학의 뇌연구소에서의 이용화씨. 어렸을 때의 읽기와 쓰기 공부가 실력의 바탕이 됐다. 이정용씨 제공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동시를 즐겨 읽고 외웠다. 이 씨만의 독특한 쓰기 지도 방법은 쪽지 활용하기. 이 씨가 ‘친구에게 좋은 일 한 가지 하기’라는 쪽지를 도시락에 넣어주면 아이 역시 쪽지로 답했다.

“글을 쓰면 생각을 많이 하고 긍정적으로 결론을 맺게 돼요. 주말마다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그 느낌을 자유롭게 쓰도록 했어요.”

방 하나의 벽면을 온통 책으로 채워 놓고 마음껏 읽도록 했고 이 씨 부부 역시 항상 아이들 옆에서 함께 책을 읽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현대소설, 동서양 고전을 비롯해 과학 및 시사 잡지 등을 두루 읽었다.

“논술을 하거나 영어 에세이를 쓰려면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해요. 단순히 글쓰기 형식을 배우거나 영어를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사교육 안 했다”

이 씨는 바이올린 외에는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과학고 진학을 위해 중3 여름방학 때 수학 과외를 시킨 것이 전부. 아이가 3세 때부터 일상대화 내용이 담긴 유아용 영어 테이프를 자주 들려줬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 되자 테이프 내용을 다 외우면서 문장 공부가 저절로 됐어요.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영어 테이프는 가급적 자주 틀어줬어요.”

6학년 때는 이웃의 영국인과 매주 30분씩 영어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타임 등 영자지를 수시로 읽게 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숙제와 복습에 충실하도록 했다. 숙제는 참고서를 기본으로 하고 백과사전을 늘 옆에 끼고 살다시피 했다. 수학은 학교 교사에게 적극 질문하도록 했다.

● 매 순간을 즐겨라

이 씨는 아이들 방에 세계지도와 한국지도를 붙여 놓았다. 자신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싶어서다. 클래식음악을 자주 틀어주고 음악에 익숙해진 후에 악기를 배우도록 했다. 용화 씨는 지금까지 꾸준히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그는 “문화생활과 삶을 풍요롭게 즐기라는 의미에서 악기를 배우도록 했다”며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아들 서울대 입학시킨 한형순씨▼


한형순 씨의 두 아들 박명근 씨(23)와 수근 군(18)은 각각 서울대 사회학과와 경영대에 진학했다. 3학년인 명근 씨는 현재 군복무 중이고 수근 군은 1학년이다.

전업주부인 한 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피아노 등 특기교육을 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두 달간 논술학원에 보낸 것 외에는 따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살던 한 씨는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 충북 제천시로 이사했다.

● 안방은 공동 독서방

한 씨는 안방에 책상 4개를 들여놓고 가족들의 공동 독서방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밝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을 익히자마자 여러 가지 책을 읽도록 했다. 도서관은 물론 인근 도서대여점에서 책을 빌리고, 헌책방을 아이와 수시로 드나들었다.

주말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이사를 다닐 때도 도서관이 가까운 집을 골랐다.

“도서관이 가까우면 책을 많이 빌려 볼 수 있고 주변도 조용해요. 공원에서 산책하면서 머리를 식히거나 운동할 수 있고요.”

아이들이 공부할 때 한 씨와 남편 박성용 씨(51·사업)도 함께 책을 읽었다. 컴퓨터 오락은 주말에만 허용했다.

● 철저한 예습 복습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 매일 예습복습을 하도록 했다. 주 단위로 학습계획을 짜서 점검하도록 했다. 시간대별로 하기보다는 몇 페이지를 할지 학습 분량을 정해 놓고 했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 공부해 서울대에 입학한 박명근씨(오른쪽)와 수근씨 형제. 올해 2월 수근씨의 고교 졸업식날 서울 도봉구 창동 서울외국어고 운동장에서 형제가 환하게 웃고 있다. 한형순씨 제공

초등학교 때 2∼3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도록 했고, 한글을 읽을 수 있을 무렵부터 영어테이프를 틀어줬다.

“고교 때는 외화를 자막 없이 봤어요. 100% 이해는 못해도 머리를 식히면서 영어 공부도 함께 할 수 있었죠.”

둘째 수근 군은 학교 성적우수자 특별전형에 지원해 영어시험만 보고 서울외국어고에 진학했다. 외고 시험을 위해 학원에 다니지 않고 외고 입시용 영어문제집을 여러 권 풀면서 공부했다.

중학교 진학 후에는 방학동안 국어 영어 수학을 한 학기 앞서 예습하도록 했다. 선행학습은 참고서 중심으로 원리를 파악하도록 했다. 학기 중에는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을 보며 다시 공부했다.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학교 선생님에게 질문하도록 했어요. 질문을 하면서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칭찬을 받게 되니 아이가 공부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됐고요.”

● 뉴스로 시사토론

한 씨 부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9시 뉴스를 함께 시청했다. 고교 때는 주말에 뉴스를 함께 봤다. 뉴스를 보면서 시사문제에 대해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잠은 하루에 5∼6시간 잤다. 점심이나 저녁 중 최소한 한 끼는 집에서 먹도록 했다. 집에서도 음식을 시켜먹는 것은 자제했다.

“하교하면 아이들의 머리를 마사지해 줬어요. 30분만 해 주면 피로가 풀리고 잠도 푹 잘 수 있어요. 체온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이죠.”

한 씨 역시 사교육을 함께 시키자는 주위 학부모들의 권유를 뿌리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한 씨는 “야단친 후에는 꼭 격려하며 자신감을 돋워주기 위해 애썼다”며 “아이들은 부모의 믿음과 칭찬을 먹고 자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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