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임원 2002년 이후 70%물갈이

  • 입력 2004년 12월 8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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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8개 시중은행 구도’가 갖춰진 2002년 이후 최근까지 불과 3년이 채 안돼 은행 임원의 70%가 교체된 것은 금융시장의 개방과 이에 따른 은행 간 인수합병(M&A) 등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국내 은행들도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원 교체 방식은 선도은행과 후발은행, 외국계와 ‘토종’ 은행 간에 차이가 뚜렷했다. 금융인들의 꿈이었던 ‘임원(부행장)’의 임기가 사실상 ‘1년’으로 짧아지면서 장점 못지않게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0%가 물갈이됐다=2002년 1월(하나은행은 2002년 12월, 외환은행은 2002년 5월 기준) 각 은행의 집행임원(행장과 부행장)은 모두 95명이었다. 이 가운데 이달 8일 현재까지 임원으로 재직 중인 사람은 31명(32.6%)에 그쳤다.

특히 미등기 부행장(76명)은 20명(26.3%)만이 현직을 유지했다.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가 이뤄진 가운데 각 은행이 선택한 교체 방식은 서로 달랐다.

선도은행과 후발은행의 차이가 가장 컸다. 국민 우리은행 등 선도은행들은 시장 변화에 민감했으며 이에 따라 경영진 교체도 대폭적으로 이뤄졌다. 선진 금융기법에 익숙한 외국계 출신 행장이 취임하고 은행 간 선두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조직 쇄신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

이 과정에서 부진한 성과를 낸 부행장들은 즉각 교체됐다.

반면 하나 한국씨티(옛 한미은행) 제일은행 등은 노사 갈등을 봉합하거나 자산 건전성을 높이는 등 내실을 기하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잦은 교체보다는 업무의 연속성 유지가 중요했으며 이에 따라 경영진 구성에서도 상대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은행 임원의 단명(短命) 배경=은행 임원의 임기는 이사회가 사외이사 중심으로 바뀌면서 짧아졌다.

시중은행들은 1999년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이고 임원 임기를 업무 성과와 연동시키는 대대적인 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또 등기이사 수를 10명 안팎으로 제한하면서 은행 임원 가운데 등기이사직은 은행장과 상임감사, 부행장 한두 명에게만 돌아갔다.

등기 임원은 상법 규정에 따라 3년 임기가 보장된다. 반면 미등기 임원은 1∼2년 간격으로 계속 고용 여부가 결정된다. 대다수 부행장들이 사실상 1년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계약직’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러다 보니 부행장들은 “은행 임원은 임시직”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한다.

▽순기능과 역기능=미등기 임원들은 6개월이나 1년마다 성과를 평가받는다. 연임 여부는 은행장이 결정한다.

성과 평가로 임원을 교체하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히 내부 승진이 많을 경우 직원에게 미치는 동기 부여 효과가 크다.

한 부행장은 “임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월급을 올려 주는 것보다 사기진작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원 임기가 짧아지면서 ‘살아남기 위해’ 성과에 치중하는 등 단기 업적주의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카드 부실이나 소호(중소사업자) 및 중소기업 대출 부실화에는 이런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상당수 부행장들의 고백이다.

전직 부행장은 “카드 부실이 예상되면서도 실적 때문에 모집인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 그랬으면 그때 직장을 잃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조흥은행 김재유(金在裕) 부행장은 “자산 건전성 개선 등 중요한 과제는 4∼5년이 지나야 성과가 나타나는데 이런 과제는 뒷전에 미루고 대출 실적, 연체율 등의 지표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국계 출신 약진=조사 결과 외국계 금융회사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외국인과 외국계 금융회사 경력자의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 금융회사 출신은 16.8%에서 30.3%로 증가했다.

외국인이거나 외국계 은행 출신 임원들은 한국씨티 외환 제일은행 등 대주주가 외국계로 바뀐 은행에 많았다.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토종’ 은행들은 외국계 은행 출신 임원이 전혀 없거나 거의 늘지 않았다.

전문성을 중시하는 추세와 외국자본 진입에 따라 자행(自行) 출신 비중은 72.6%에서 62%로 낮아진 반면 외부 영입(21.1%→27%)과 대주주 임명(6.3%→11%) 비중은 높아졌다.

▽출신 대학과 고교 특성=임원들의 출신 대학은 서울대(47.1%→32.1%)가 대폭 줄어든 가운데 연세대(16.5%→15.5%)와 고려대(12.9%→11.9%)도 소폭 감소했다.

출신 고교가 상고인 임원 비중은 2년여 사이 12.6%에서 21.4%로 높아졌다. 특히 신한은행 임원 10명 중 6명, 하나은행은 12명 중 5명이 상고를 졸업했다.

은행 임원을 3명 이상 배출한 상고가 2002년 1월에는 없었으나 지금은 대구상고(4명)와 광주상고 군산상고(이상 3명) 등 3곳이다.

2002년에는 경기고(8명), 광주제일고(7명), 대전고 경복고 중앙고(이상 6명) 출신 임원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울고(9명), 경기고(7명), 전주고(5명) 순으로 많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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