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6시간 총파업 꼭 해야했나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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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새 지도부 출범을 계기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기치로 내걸어온 민주노총이 26일 6시간 동안 전국에서 총파업을 벌였다.

이번 파업은 무기한에서 시한부로 수위를 낮춘 데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정규직 근로자가 행동에 나선 첫 사례’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노동법상 이번 파업은 명백히 불법인 정치파업이다. 민주노총의 5대 요구사항 중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 △한일자유무역협정 반대 △이라크파병 연장 저지 등은 근로조건과 전혀 관계가 없거나 국가정책에 해당하는 사안들이다. 절차상으로도 파업찬성 투표에서 노동법상 가결 요건인 재적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했다.

물론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법안은 근로조건의 핵심인 고용형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사안이므로 합법적인 쟁의 대상이 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민주노총 내 온건파 수장인 이수호(李秀浩) 위원장의 고민도 컸던 것 같다. 그는 파업 전날인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파업으로 인한 생산현장 손실이 크다는 점을 잘 안다. 또 아까운 시간급을 포기하고 파업에 참여해야 하는 비정규 청소용역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총파업 결정을 내리기까지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결국 파업을 강행했으니 책임 문제에서 이 위원장은 자유로울 수 없다.

노동운동의 의미를 원색적으로 깎아내리는 발언을 거듭함으로써 민주노총 지도부를 궁지로 몰고 또 노동계 내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켜 준 김대환(金大煥) 노동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의 대응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설령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과연 민주노총이 총파업까지 벌였어야 했는가는 의문이다.

내수침체로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있고 실업문제도 최악의 상황이다. 이날 파업으로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발생한 생산차질액만 무려 1200억원이 넘는다.

이 위원장은 올해 초 “명분이 없는 연례적 불법 총파업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이번 파업이 명분이 있고, 또 합법적인 것인지 묻고 싶다.

이종훈 사회부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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