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전교조의 추억

  • 입력 2004년 11월 1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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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격과 눈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1999년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전교조가 발표한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10년간의 투쟁 끝에 전교조 합법화를 이뤄 낸 이들의 ‘초심(初心)’은 기자회견문 곳곳에 묻어난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권익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겠다’ ‘세력 경쟁의 조직 활동을 지양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도 눈길을 끈다.

‘우리는 비합법시대의 어려웠던 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표출되었던 상대적 과격성, 급진성을 말끔히 걷어 내겠습니다. 그동안 무례하고 과격했던 행동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면서 새로운 합법시대를 사는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공무원노조의 理想과 현실▼

지난 5년 동안 참으로 많은 게 달라졌다. 전교조는 한국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단체가 되었다. 아울러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과격성 급진성을 말끔히 걷어 내겠다’던 전교조의 각오는 ‘추억’ 속의 빛바랜 말들이 되고 말았다.

최근 ‘고교등급제 파문’에서 전교조가 한국의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윽박지르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교조 요구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영향력 면에서 교육부를 능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전교조의 파워는 현 정부와 ‘코드’가 같은 데서 상당 부분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교육부 관료들이 전교조와 관련된 문제를 처리할 때 ‘정권 386’ 등 권력 상층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게 있다. 교사들에게 주어진 철저한 ‘신분보장’이다. 경제가 아무리 나빠도 월급 안 나오는 일은 없다. 그 흔한 평가도 받지 않는다. 해고 불안에 시달리고 회사가 도산할까 걱정하는 샐러리맨과는 마주하는 현실이 다르다.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맡기고 있으니 교사에 대해 생각은 많아도 말을 꺼내긴 어렵다. 전교조가 이런 확고한 지위를 등에 업고 집단으로 뭉치면 힘은 배가되기 마련이다. 전교조의 장기인 강력한 투쟁 방식도 이들의 무한질주에 가속 페달을 가하고 있다.

견제받지 않는 집단이 그렇듯이 이들의 오만(傲慢)은 점입가경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파문 때에는 정치적 중립 조항을 어기고 ‘탄핵 반대’에 나섰고, 4월 총선 때는 ‘민노당 지지’, 이라크 추가 파병 때는 ‘파병 반대’ 등 궤도 이탈을 반복했다. 법원이 불법으로 규정한 연가투쟁을 위해 교실을 비우는 일도 여전하다.

이들은 교원노조법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이 잘못된 것이며 교원노조도 노동3권을 다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치주의를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법을 탓하고 있다. 정치적 자유를 외치고 일반 노동자처럼 파업권을 갖겠다고 한다.

전교조를 합법화했을 때 국민은 상식선에서 교원노조다운 활동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理想)이었고 현실은 별개의 것이었다. 원래 이익집단이란 조직의 세력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법이다. 왜 말과 행동이 다르냐고 그들을 탓하기도 싫다. 세상이 어차피 그런 것 아니던가.

▼단체행동권까지 갖게 되면▼

공무원노조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룰 때 함께 공공영역에 속하는 전교조의 추억만큼 확실한 기준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전교조는 전체 교원 40만명 가운데 4분의 1에 해당하는 조합원 9만명을 갖고 교육계를 좌우하고 있는데 공무원노조는 30만명에 이르는 조합원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의 원안(原案)대로 단체행동권을 갖지 못 해도 엄청난 규모만으로 파워집단이 될 게 틀림없다. 전교조가 참교육을 내세웠듯이 공직비리 척결을 명분으로 내세운 공무원노조도 국민보다 ‘조직과 집단의 이익’을 앞세울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나마 전교조를 제어하는 ‘고삐’는 단체행동권과 정치활동 금지 조항이다. 교원노조법 입법 당시 전교조에 단체행동권까지 주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공무원노조법 문제도 결론은 분명하다. 단체행동권과 정치활동 권한은 안 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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