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침체… 인력시장 깊은 시름

  • 입력 2004년 10월 7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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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 나간 지 일주일째예요. 지금쯤 조금은 벌어놔야 겨울을 넘길 수 있는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습니다.” 7일 오전 5시경 서울 종로구 창신동 창신약국 앞 인력시장. 5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대표적인 일용직 건설인력시장인 창신동은 공사장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하루 200∼300명씩 모여들었던 곳이다.》

오전 4시에 나왔다는 이모씨(50·경력 5년)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올해 들어서는 100명 가까이 모이는 날도 거의 없다“며 ”기술이 있는 사람들도 놀고 있는 마당에 나 같은 잡부가 일을 잡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소연했다.

1시간가량 지나자 다행히 20여명은 일감을 찾았지만 반 이상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일자리를 찾아 경기 파주시 등의 건설 현장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60·여)는 “2000원 하는 소주 한 병으로 3, 4명이 안주 없이 술만 마시고 흩어지기 시작한 게 한참 됐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4분기(4∼6월) 중 부도난 건설업체는 192개사로 1·4분기(1∼3월)의 167개사에 비해 15%가 늘었다. 부도 처리된 건설업체는 4월 54개사에 이어 5월 68개사, 6월 70개사 등으로 3개월 연속 증가세.

8월 국내 건설 수주액도 4조159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무려 39.2%나 감소했다. 이는 1999년 3월 기록한 전년 동월 대비 51.1% 감소 이후 5년5개월 만에 최대의 감소 폭이다.

이 같은 최악의 건설경기 침체는 인력시장은 물론 레미콘, 건축자재, 이사 등 관련 업계에까지 ‘후폭풍’을 몰고 왔다.

9월의 레미콘 출하는 전년 동기 대비 20.2%나 감소했다. 레미콘협회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부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경기가 나아지지 않을 경우에는 레미콘업체 건설자재업체 등 관련 산업 전체가 연쇄 도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가구업이나 도배·장판 등 인테리어업, 이삿짐센터 등도 마찬가지.

운송주선연합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간은 연평균 486개 업체가 휴폐업신고를 냈지만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엔 1122개 업체가 휴폐업신고를 냈다.

연합회 관계자는 “이사업체 대부분이 사무실 운영비는 고사하고 전화요금도 벌지 못하는 개점휴업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지금까지 업체의 20%가량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는 나종성씨(54)는 “이사를 많이 하는 가을철이라 예전 같으면 한 달에 20일 이상을 일했는데 요즘에는 7일 일하기도 힘들다”며 “도배사들의 일당도 예전의 12만원에서 많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경제연구센터장은 “건설경기는 고용유발효과가 크기 때문에 내수부문과 서민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건설경기의 급격한 위축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부문의 투자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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