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교과서 논란]균형감 부족… 국가관 왜곡 우려

  • 입력 2004년 10월 5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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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는 여야 의원들의 공방으로 정회를 거듭하는 등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날 오후 정회된 가운데 편향성 논란을 빚은 금성출판사 간행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텅빈 의원석 책상 위에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김동주기자
5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는 여야 의원들의 공방으로 정회를 거듭하는 등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날 오후 정회된 가운데 편향성 논란을 빚은 금성출판사 간행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텅빈 의원석 책상 위에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김동주기자
금성출판사의 고등학교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편향성 논란에 대해 학계에서는 교과서가 갖춰야 할 균형 감각이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학자는 우리 스스로를 부정하는 역사관에 근거하고 있는 교과서들이 많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교과서는 판단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국가관 형성 시기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시각을 바탕으로 서술돼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유영익(柳永益)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이승만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들을 다 훑어본 결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부분에서 마치 대한민국이 잘못 태어난 국가인 것처럼 서술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며 “미래의 국가 주인인 청소년들에게 자국의 기본적 역사인식을 심어 줘야 할 근현대사 교과서가 자국을 부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국사 교육의 의의를 상실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한국사 통사 ‘다시 찾는 우리역사’의 저자인 한영우(韓永愚) 한림대 특임교수는 “역사서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성인용 교과서로는 적합하지만, 국가관이 형성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좀 더 세심한 교육적 배려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의원이 지적한 부분들만 떼놓고 보면 과도한 표현의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과서의 전체 맥락을 살펴볼 때 해당 기술을 상쇄하는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해동(尹海東)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한국에는 남쪽을 두둔하고 북쪽을 폄훼하는 역사서와 그 반발로 남쪽에 대해선 날카로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이해의 잣대를 사용하는 두 부류의 역사서만 존재한다”면서 “금성출판사 교과서도 이런 한국 역사학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윤 연구원은 “북한의 천리마운동이나 남한의 새마을운동 모두 1930년대 일제강점기 농촌진흥운동과 전시동원체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데도 이를 분리해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과 남한 모두에 대해 같은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역사개론서가 빨리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친북한적 시각에서 서술됐다는 권철현 의원의 지적과 관련해 북한 연구 학자들은 남한과 북한을 비교하는 데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지호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북한학)는 “남한의 개발독재에 대해서는 매서운 비판을 가하면서 오늘날 식량난과 경제파탄을 낳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하는 자학사관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교과서가 발행한 고교 교과서 ‘한국근현대사’ 6·25전쟁 부분에서 남침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으며, 서울대 사대 국정도서편찬위원회가 엮은 ‘도덕’ 교과서도 통일의 당위성만 강조할 뿐 인권 탄압, 식량난 등 북한의 실상에 대한 기술은 찾아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류길재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도 “교과서라면 먼저 우리 것을 지켜 가면서 북한을 포용해 갈 생각을 해야 한다”며 “북한이 체제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현실을 호도하고 있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북한 주장 그대로 옮겨 적어놓기만 한다면 오늘날 북한이 직면한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어린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집필진 반박“소련도 北점령군으로 묘사…南경제성장 明暗 함께 다뤄”▼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편향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5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는 여야 의원들의 설전으로 하루 종일 파행을 거듭했다.

여야 의원들은 논란 끝에 6일 오전 10시 인천시교육청에서 열리는 국정감사에 정강정(鄭剛正)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등 관계자 2명을 참고인으로 채택하기로 합의하고 오후 8시가 다 되어서야 서울시교육청 감사를 시작했다.

교과서를 대표 집필한 김한종(金漢宗) 한국교원대 교수는 이날 오후 늦게 서울시교육청 국감현장을 찾아와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비판한 교과서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교과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후 맥락을 봐야 하는데 권 의원이 필요한 부분만 악의적으로 발췌해 진의를 왜곡했다”며 공개 해명을 요구했다.

다음은 김 교수 등 집필진의 반박 내용.

▽“미국은 억압적 점령군, 소련은 순수한 조력자”=권 의원은 교과서의 ‘미국은 자신들의 군정만이 유일한 정부임을 거듭 확인했다…소련군은 북한 주민들이 세운 건국준비위원회를 대부분 인정했다’는 부분에 대해 “미국은 억압적 점령군, 소련군은 순수한 조력자로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집필자들은 “교과서는 소련군도 점령군 행세를 했으며 김일성의 집권을 도왔다고 서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권 의원은 ‘일장기가 내려진 자리에 성조기가 올라가다’라는 표현에 대해 “일본이 미국으로만 바뀌었을 뿐 식민지배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집필자들은 “공식 행정기관이 조선총독부에서 미군정으로 넘어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한 것”이라고 말했다.

▽“6·25전쟁은 군사적 충돌”=권 의원은 “‘6·25전쟁’에 대해 ‘남침’이란 표현 대신 외교분쟁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군사적 충돌’로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집필자들은 “군사적 충돌 표현은 ‘6·25전쟁’ 자체가 아니라 그 이전에 38도선 등에서 일어났던 충돌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 공격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고 교과서에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역사는 수학처럼 모든 교과서가 똑같이 서술할 수 없다”며 “역사교육의 의미는 과거에 대해 일방적으로 ‘잘했다’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드러내 더 나은 미래를 가꿔가자는 데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과 천리마운동=권 의원은 “‘천리마운동은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강제 노동착취 수단인 천리마운동을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자발적 운동으로 미화했으며 반면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썼다”고 비판했다.

집필자들은 “교과서에는 천리마운동이 ‘김일성 1인 체제’의 확립을 위해 주민의 노동력을 동원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됐다는 내용도 있다”며 “긍정, 부정을 떠나 당시 정부가 새마을운동을 벌이게 된 배경을 설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성장과 재벌=권 의원은 1960년대 이후의 경제성장에 대한 교과서의 기술이 식민지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가 ‘한국경제는 자본과 기술에서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종속돼 갔다’고 기술하는 등 경제발전의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작용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이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필자들은 “경제성장을 ‘한강변의 기적’으로 표현했다”며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다뤄 경제성장의 공과를 모두 다룬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재벌의 경제 집중도를 증빙하는 자료로 1980년과 1993년 등 시점상 통계자료로서의 실효성이 없는 자료를 제시했다는 권 의원의 주장에 대해 “당시 경제를 서술하면서 같은 시점의 통계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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