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수사실태]‘사라진 사람들’ 왜 못찾나

  • 입력 2004년 7월 23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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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실종자수사 체계가 보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이번 유영철(柳永哲·34) 연쇄살인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다수의 희생자가 이미 실종신고가 되어 있었는데도 실제 경찰이 이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씨가 3월 살해한 권모씨(24·여)는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에 3월 20일 실종신고됐다. 숨진 한모씨(34·여) 김모씨(26·여)도 마찬가지였다. 김씨에 대해서는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에 납치 신고전화까지 걸려왔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수사했지만 연쇄살인과 관련된 단서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피해 여성의 어머니는 “납치 가능성을 말하자 경찰관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면박만 주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종자수사 실태=올해 초 부천 초등학생 및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등이 잇따르자 경찰은 2월 실종자에 대한 초기수사 강화안을 발표했다.

미아·가출인 신고가 접수되면 △관할 지구대, 경찰서 형사계, 여성청소년계, 112타격대 등이 동시 출동해 현장수색 △24시간 이내 관할 경찰서 형사과장 주관으로 합심위원회 개최 △납치 등 범죄 혐의 있으면 즉각 수사 착수 등이 그 내용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초동수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일선 경찰관들은 “인력과 업무 효율성을 무시한 이벤트성 대책일 뿐”이라고 냉소하고 있다. 실제 실종신고 접수 즉시 수사에 착수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한 경찰관은 “특히 성인 실종자의 경우 범죄와 연관돼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면 인력 사정상 곧바로 수사에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담수사반 설치해야=전문가들은 “실종자수사만 제대로 했어도 연쇄살인사건이 사전에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경찰서간 공조체제를 통해 실종사건을 수사해야 하며 전담수사반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이상현(李相賢·범죄심리학) 교수는 “가출·실종자 수사는 경찰서간 협조가 특히 중요한데도 강력범죄 검거 실적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공조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나주봉 대표는 “사건이 터져야만 시작되는 실종자 수사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며 “실종자와 미아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경찰대 이웅혁(李雄赫·범죄학) 교수는 “미국은 범죄정보 시스템을 통해 각 경찰서 단위에서 정보 공유가 잘 돼 있다”며 “특정 지역이나 유사 업종 여성의 실종신고가 잇따르면 이 시스템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컴퓨터 범죄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범행 수법, 발생시기, 신고사항 등을 입력하면 기존 수사자료를 검토할 수 있고 사건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출·실종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관리뿐만 아니라 시민과의 협조 등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배워야 할 점이라고 지적한다.

경찰대 표창원(表蒼園·범죄학) 교수는 “외국에선 수사가 장기화되면 경찰 이외에 전문성을 가진 민간인으로 구성된 실종·가출자 찾기 모임이 구성돼 지속적으로 활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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