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거미 수목원 ‘아라크노피아’ 문연 김주필교수

  • 입력 2004년 7월 13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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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에만 안 물리면 된다”면서 독거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김주필 동국대 생물학과 교수. 그는 “유전공학을 통해 거미의 대량 번식에 성공하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훌륭한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남양주=강병기기자
“혈관에만 안 물리면 된다”면서 독거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김주필 동국대 생물학과 교수. 그는 “유전공학을 통해 거미의 대량 번식에 성공하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훌륭한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남양주=강병기기자
대다수 사람에게 거미는 혐오스러운 동물이다. 그러나 여기 거미를 친구처럼 대하는 이가 있다. 매일 거미에게 밥을 주고 얘기를 나눈다. 거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라크노피아(arachnopia)’라는 수목원까지 만들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거미천국’이다.

동국대 생물학과 김주필(金胄弼·61) 교수는 30년 넘게 거미 연구에 매달려 왔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거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를 만나려면 거미가 살고 있는 산속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이달 초 문을 연 아라크노피아 수목원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천 계곡 끝자락에 있다. 2만여평 규모로 거미사육장, 거미박물관, 야생화 단지, 어린이 대상 생태학교 등을 갖추고 있다. 거미박물관과 사육장에는 살아 있거나 박제된 거미 1200여 종이 전시돼 있다. 김 교수가 방사해서 키우는 200여 종의 거미는 수목원 나무 사이로 기어 다닌다.

김 교수는 “‘거미는 무섭고 징그럽다’는 선입견을 버리면 인간 생활에 유용한 동물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고 강조한다. 미국 일본 등에서 거미 연구가 발달한 것도 산업 활용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단백질 아미노산이 풍부한 거미줄을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다른 동물의 젖에서 생산, 가공 처리하면 고강도 섬유로 쓰일 수 있다. 거미 독과 소화효소는 이미 외국에서 국부마취제, 해독제, 소화제 등의 의약품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해충의 천적으로 통하는 거미는 친환경 농사에도 한몫 한다. 그는 6년 전 농약을 쓰지 않고 거미로 해충을 퇴치하는 ‘거미농법’을 개발했다. 거미줄을 치지 않는 늑대거미, 게거미, 깡충거미 등을 논에 풀어놓으면 벼멸구, 매미충 등의 해충을 먹어 치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거미 연구를 위한 투자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기업도 정부도 관심이 없다. 그는 매년 국방부와 산업자원부에 거미독과 거미줄에 대한 연구계획서를 내고 있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러다보니 학계에서도 거미 연구는 ‘찬밥’ 신세다. 국내에서 거미를 연구하는 학자는 10여명에 불과하다. 그 역시 “왜 하필이면 거미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는 “동물학 연구는 생태분류에서 시작한다”면서 “가장 대표적인 절지(節肢)동물인 거미에 대한 연구 없이 동물학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가 거미에 매료된 것은 서울대 대학원생 시절 곤충채집하러 진중천에 갔다가 희귀 거미들을 발견하면서부터. 현재 국내에 서식하는 거미 1000여 종 중에서 130여 종은 김 교수가 찾아낸 것들이다. 깊은 산속에서 거미를 채집하다가 간첩으로 몰리기도 여러 번. 한국땅거미, 버들염낭거미, 관악유령거미 등이 그가 찾아낸 거미들이다.

그는 다양한 한국 거미들을 해외에 알리고자 1984년부터 일 년에 두 번씩 ‘한국 거미’라는 영문 보고서를 발간해 외국 거미학자들에게 발송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 2000여 종의 거미를 학문적으로 분류한 ‘거미도감’을 내놓았다.

그는 지금 산속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사실 사업 수완도 만만찮다. 대학생 때부터 학원 생물 강사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아예 학원을 통째로 인수해서 10여년간 경영한 전력이 있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생물 참고서에서 나오는 인세와 학원 경영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아라크노피아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가진 돈을 자선활동에 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일생 연구한 분야의 자료를 정리해서 후세에게 교육의 장으로 남겨 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아라크노피아 방문객들에게 거미를 한 마리씩 유리병에 넣어서 나눠 준다. 일반인들이 거미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주일에 귀뚜라미를 한 마리씩 먹이로 주면 집에서도 쉽게 애완용 거미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에게 영화 ‘스파이더맨’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인간이 거미의 습격을 받아 싸우는 내용 아니냐고 되묻는다. 반대로 인간이 거미로 변신해서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라고 하자 그는 “그렇다면 꼭 보러 가겠다”면서 웃었다.

남양주=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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