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표 내라는 얘기…검찰 힘빼기 의혹”

  • 입력 2004년 6월 1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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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송광수 검찰총장에 대한 발언이 사실상 ‘사퇴 요구’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자 대검 간부들과 일선 검사들은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인 채 하던 일을 멈추고 노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특히 대통령이 ‘총장 임기제’를 거론한 데 대해 크게 동요했다.

▽충격받은 검찰=간부들 사이에선 송 총장이 사표를 제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대검의 한 간부는 “대통령 발언이 ‘사표를 내라’는 얘기보다 더 무섭더라”면서 “또다시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총장이 나오는 것이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검의 다른 간부는 “이런 일로 물러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도 “하지만 송 총장이 가진 카드가 너무 없다”고 말했다. 이정수(李廷洙) 대검 차장은 오후 4시10분쯤 노 대통령의 발언록을 갖고 송 총장을 면담했다.

하지만 전날 송 총장 발언 적합성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검찰 간부는 “모 방송사가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론을 보도했지만, 여권이나 법무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지 않았느냐”라며 “송 총장의 판단이 섣불렀던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대검의 중견 검사는 “총장이 할 만한 말을 한 것”이라며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정치검찰의 오명을 겨우 벗고 새롭게 출발하려는 시점에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공비처) 같은 문제가 자꾸 나오니까 ‘검찰 힘빼기’란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송 총장은 이날 오후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피했다. 오후 6시55분쯤 총장실을 나선 송 총장의 얼굴은 몹시 굳어 있었다. 송 총장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16일 입장발표를 한다는데 논의가 있었나”란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도 관심을 감추지는 않았다.

1988년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래 12명의 총장 가운데 임기를 채운 총장은 4명에 불과하다.

▽충돌의 근원은 검찰개혁 문제=송 총장과 노 대통령이 충돌을 하게 된 밑바탕에는 검찰 개혁에 대한 엇갈린 인식이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검찰에 대해 ‘정치적 중립’ 보장을 약속하고 일정 부분 이를 지켜 왔다. 과거 정권에서 흔히 행해졌던 검찰수사에 대한 간여나 개입도 표면적으로는 거의 없는 듯했다. ‘검찰 수사의 정치적 독립’이었다. 여기까지는 노 대통령과 송 총장이 견해를 같이했다. 그러나 이것이 노 대통령이 지향하는 검찰 개혁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는 ‘검찰개혁의 1단계’에 불과하다.

2단계는 ‘검찰 권력의 분산’으로 정리된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검찰권의 집중과 비대화’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 왔다. 3월 기자회견에서는 검찰에 대해 ‘소름이 끼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수부의 기능을 축소하거나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별도의 수사권을 가진 공비처를 설치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 같은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비처가 설치되면 검찰은 ‘사정(司正)의 중추적 기관’이라는 위상을 잃게 된다.

공비처 신설 외에도 법무부가 추진 중인 검찰 개혁의 방향은 일반 형사업무의 강화와 특별수사 기능의 조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말과 이달 초에 걸쳐 이뤄진 검사장 및 중간 간부 인사에서도 이 같은 의도가 반영됐다. 각 지검에서 형사부를 관할하는 2차장의 비중이 훨씬 높아진 반면 특수부와 공안부 등을 관할하는 차장 자리는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기존 검찰의 관점에서 이 같은 상황은 수용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대검의 한 간부는 “공비처를 신설하는 것은 거악(巨惡)을 척결하는 검찰의 기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송 총장과 노 대통령의 충돌은 이 같은 ‘검찰 개혁’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일시적으로 봉합되더라도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검찰총장임기제 도입이후의 총장별 채임기간
이름임기
22김기춘1988.12.6∼1990.12.5(2년)
23정구영1990.12.6∼1992.12.5(2년)
24김두희1992.12.6∼1993.3.7(4개월)
25박종철1993. 3. 8∼1993.9.13(6개월)
26김도언1993. 9.16∼1995.9.15(2년)
27김기수1995.9.16∼1997.8.7(23개월)
28김태정1997.8.7∼1999.5.24(1년9개월)
29박순용1999.5.26∼2001.5.25(2년)
30신승남2001.5.26∼2002.1.15(8개월)
31이명재2002.1.17∼2002.11.5(10개월)
32김각영2002.11.11∼2003.3.12(4개월)
33송광수2003.4.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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