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관할규정 위반” 이례적 영장기각

  • 입력 2004년 6월 9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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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피의자가 연고가 없는 곳에서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산업정보를 유출한 피의자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정종관(鄭鍾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신모(35), 김모씨(32)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9일 기각했다.

정 판사는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다 신씨나 김씨, 고소인의 주거지가 모두 성남이 아닌 만큼 형사재판의 관할규정 위반으로 보인다”고 영장기각 사유를 밝혔다.

형사소송법 제4조 제1항은 형사재판의 관할을 범죄가 일어난 장소 또는 피고인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로 규정하고 있다.

신씨는 경기 부천에, 김씨는 인천에 살고 있으며 이들을 고소한 회사는 서울 금천구에 있다.

정 판사는 “관할 규정은 법원이나 검찰의 능률적인 사무분담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수사나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는 관할 규정의 ‘피고인의 현재지’에 대해 통상 수사기관이 합법적으로 피의자를 구금한 장소로 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성남에서 피의자를 구금한 만큼 관할 위반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성남지청이 산업정보 유출사건 수사에 전문성이 있다고 보고 고소인이 피의자를 성남지청에 고소한 것”이라며 “관할 규정은 당사자의 불편을 줄이고 청탁수사의 위험을 막자는 취지인데 이번 사건에 관할 규정을 적용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 판사는 “구금 장소를 현재지로 보는 견해는 적법할 수는 있어도 정당하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피의자에 대한 인권이 시대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형사소송법을 엄격하게 적용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폐쇄회로(CC)TV 제작업체인 C사의 연구원이었던 신씨 등이 경쟁업체인 K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올해 3월부터 두 달간 CCTV 제작의 핵심기술과 관련된 프로그램 15개를 K사로 넘긴 혐의로 이들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었다.

검찰은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고소회사인 C사의 관할지인 서울남부지검이나 K사의 관할지인 인천지검 부천지청으로 이 사건을 이송할 계획이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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