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사업 구조개편 '물거품'

  • 입력 2004년 5월 31일 23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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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노사정위원회가 31일 한국전력공사의 배전(配電)산업 분할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노사정위 공공부문 구조조정특별위원회 보고서를 내놓음에 따라 지난 5년간 끌어 왔던 한전 민영화가 벽에 부닥쳤다.

노사정위는 다음주 회의를 열어 최종방침을 결정할 계획이지만 이번 보고서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방침이어서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에 불거진 한전 배전산업 분할 문제는 현 정부에서 처음 구체화되는 공기업 민영화 프로그램인 만큼 그 결과에 따라서 전반적인 공기업 민영화 정책 추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배전 분할 중단 결정 왜 나왔나=한전의 배전산업 분할 방침은 1999년 산업자원부가 발전(發電) 및 배전부문을 분할한 뒤 단계적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밝히면서부터 본격화됐다.

기본계획의 목표는 배전부문을 6개사로 나눠 전력 판매 시장에서 경쟁을 유발하고, 한전의 경영 효율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전 노조가 2002년 2월 정부 방침에 대해 ‘급조된 민영화 결정’이라며 38일간의 파업을 벌이는 등 강경하게 맞선 데다 작년 초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배전 분할 방침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려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번 노사정위 보고서도 이를 반영해 △전력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이윤추구가 목표인 민간기업이 배전사업을 하게 되면 전기료가 오르게 되고 △농촌이나 산간 오지에는 전력 공급을 꺼리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배전 분할 정책에 대해 반대했다.

하지만 산자부 등은 “발전회사는 5개로 분할된 상태에서 경쟁 체제로 가는 첫 단추를 끼웠지만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부문은 독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 왔다.

실제 이번 최종 보고서 도출 과정에서도 공동연구단의 정부측 위원 2명이 끝까지 반발하는 등 난항을 겪었다.

공동연구단에 정부측 추천위원으로 참가한 김종석(金鍾奭) 홍익대 교수는 “배전부문 분할 대신 독립사업부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안은 한전에 전무급 임원 6명을 더 두자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다른 공기업 민영화에도 영향=배전부문 분할에 대한 사실상의 중단 결정은 연말을 시한으로 노사정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가스산업 민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설비부문에 대해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는 대신 도매 부문은 분할 방식과 신규진입 방식을 놓고 방침을 정하기로 했지만 이번 노사정위의 결정에 따라서는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게다가 가스산업의 경우 전력산업과 달리 국회 상임위에 제출된 구조개편 관련 3개 법안 개정안이 16대 국회가 끝남에 따라 자동 폐기돼 민영화의 근거조차 취약하다. 또 현재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의 통합 문제에도 이번 노사정위의 결정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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