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평준화 논쟁’ 다시 불붙나…KDI보고서 논란

  • 입력 2004년 2월 2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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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이 23일 내놓은 ‘고교 평준화정책이 학업 성취도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실증 분석’ 논문은 학업 성취도 측면에서 비(非)평준화가 평준화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관심과 ‘민감성’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

KDI 논문은 비평준화 지역 고교들이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만큼 학습 효과가 높은 데다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경쟁하면서 더 효율적인 교육 방식을 적용한 것이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가 표본조사 대상을 중소도시 고교생으로 제한한 데다 동일한 표본 집단의 성적 변화를 실질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어서 신뢰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KDI “비평준화가 성적 향상에 효과적”=KDI는 표본 추출한 중소도시 고교 1, 2학년생 3024명의 성적을 분석해 사실상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고교 1학년생들의 주요 5개 과목(국어, 영어 등) 평균 점수와 2학년생 평균 점수를 비교했을 때 비평준화 고교생들이 평준화 고교생보다 성적 향상 폭이 상대적으로 컸다는 것.

KDI는 그 이유로 평준화지역 고교에서는 학습 능력에 큰 차이가 있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것을 꼽았다. 하위권 학생들이 교사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학습에서 ‘소외’되는 악순환이 거듭돼 전체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

비평준화지역 고교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도 평준화 지역 고교들과의 성적 격차를 넓히는 요인이라고 KDI는 분석했다.

비평준화지역 고교들이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우수한 교사를 초빙하고 혁신적인 교육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 현실에 안주하는 평준화 지역 고교들과 차별화되고 있다는 것.

이영(李榮)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비평준화나 평준화 정책을 획일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학부모나 학생들이 다양하게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나 내용이 특별한 사립학교도 나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평준화 찬성론자들 “성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평준화 교육 정책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학생들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반박한다. 엘리트와 학력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을 분리해서 교육하는 것은 사회 통합에 저해가 돼 결국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쓰게 된다는 것. 현대사회가 창의력과 인성 등이 복합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평준화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박도 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양승실(梁承實) 연구위원은 “비평준화지역 고교는 학생들에게 저녁 늦게까지 자습을 시키는 등 평준화지역 고교에 비해 투입되는 학습량부터 차이가 나는 만큼 단순히 평준화, 비평준화 여부로 학업 성취도 차이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교육학과 정진곤(鄭鎭坤) 교수도 “사립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각 대학 부속학교가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평준화가 지닌 제도적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일부 평준화 교육 옹호론자들은 KDI가 비평준화 정책을 재도입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어린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어떻게 조사했나=KDI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1년 작성한 ‘국가수준 교육성취도 평가 연구 자료’를 기초로 했다. 이 자료는 2001년 6월 기준으로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 2학년생 중 100분의 1을 대상으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5과목에 대해 시험을 실시해 나온 점수가 기본이다.

이 자료 중 KDI가 이용한 데이터는 고교 1, 2학년생 성적. 대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치맛바람’이나 ‘과외’ 등 변수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중소도시 학생들 성적만 따로 뽑아 분석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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